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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자 일요 웹소설 -서기 2060 제 1화

bonanza38 2023. 8. 13. 20:51

제1화 냉동인간 프로젝트                                                                                       보낸자 작

제 1 화 냉동인간 프로젝트

2023년 8월 11일 금요일

초여름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사건 기록을 정리하고 11시가 넘은 시간에 정훈은 세단에 올랐다. 

에어컨을 켰지만 메케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차창을 열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아내의 문자가 와 있었다. 

'지금 출발한다'

정훈은 간단히 답글을 썼다. 

 

검사 5년 차. 이제 막 선배들 꽁무니만 쫓선 신참내기를 벗어났다.  수사를 주도하는 책임자가 되려는 순간 뜻 밖에 중요한 사건을 접했다.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가 검사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훈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절감했다. 

여러 곳에서 압력성의 혹은 회유성의 연락에 시달리면서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혼란스러웠지만 마지막 사법고시 출신으로서의 근거 없는 자부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사법연수원 첫 수업의 떨림과 검사로 임용되는 순간의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덤프트럭

밤 12시가 가까운 시각.

집에서 가까운 8차선 도로. 

사거리 교차로에는 차가 없었다. 

 

정훈은 연신 거북목을 바로 세우려고 고개를 뒤로 뒤고 젖히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고개를 곧추세우고 중립기어를 드라이브로 바꾼다. 

서서히 교차로에 진입하는 순간.

꽝!

굉음 소리와 함께 거대한 덤프트럭에 치인 세단은 구겨진 채 몇 바퀴를 회전한다. 

정훈의 목은 순간적으로 운전석 창문을 향해 꺾였다. 열어놓은 차창 덕분에 정훈의 머리가 유리에 부딪히지 않았지만 차장 밖으로 목이 돌아가고 말았다. 목이 꺾이면서 정훈은 의식을 잃었고 몸이 뒤틀리면서 브레이크를 밟으려던 정훈의 발길질은 엑셀을 누르고 있었다. 반시계방향으로 몇 번을 회전한 후 세단은 인도 연석을 향해 돌진했다. 정훈의 목이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운전대를 향할 때 에어백이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주었다. 

 

분당 서울대 병원 응급실 입구에 앰뷸런스가 요란스러운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환자 이송을 재촉하자 한 무리의 응급의학과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들었다. 

아직 맥박은 살아있었다. 하지만 자가 호흡이 힘들 정도로 상태는 심각했다. 

"CPR"

정훈의 몸에 올라탄 의사가 강하게 심장을 압박했다. 

의사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힘 무렵 정훈의 호흡은 돌아왔다. 

하지만 의식은 여전히 없었다. 

 

혜지는 무슨 정신으로 분당 서울대병원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택시 안에는 잠에서 깬 첫째 다솔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볼 뿐 칭얼대지 않았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혜지는 택시 안을 둘러보았다. 순간 다솔이와 눈이 마주쳤다. 혜지는 울컥했지만 본능적으로 표정을 감추며 다솔이를 향해 짐짓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아빠 괜찮을 거야!"

"아빠 어디 아파?"

순간 혜지는 눈두덩이 깊은 곳까지 힘을 주었다. 큰 눈에 흰자가 도드라졌다. 하지만 떨리는 입술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려는 입고리와 충돌하고 있었다. 눈과 입술의 부조화를 느낀 다솔이는 애써 엄마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혜지는 늙은 노파처럼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빠를 닮은 다빈이가 속도 모르고 너무나 평화롭게 곤히 잠들어 있었다. 다빈이가 태어났을 때 정훈의 해맑은 모습과 분만실에 들어와 다은이의 탯줄을 끊어 주던 어리바리했던 정훈과의 시간들이 역순행으로 떠올랐다.  

사법 고시 합격자 명단을 같이 확인하던 순간도 떠올랐다. 

몇 년간 계속 사법고시를 실패하면서 마지막 시험까지 몰린 정훈의 예민했던 순간도 떠올랐다. 

대학 1학년 영화 동아리 첫 모임 때의 풋풋했던 순간도 떠올랐다. 

 

택시가 분당 서울대 병원 응급실 정문에 들어서자 혜지는 갑자기 뇌의 기능이 정지된 듯 움직이지 못했다. 택시 기사가 요금을 말해줄 때까지 혜지는 아무런 동작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고 병원까지 달려왔던 모든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다빈이를 업고 다솔이의 조막손을 잡고 허겁지겁 응급실 정문을 향해 달렸던 기억만이 어렴풋이 되새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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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0년 12월 1일 수요일

2060년 12월 1일

12월이지만 사람들의 복장은 무겁지 않다. 

신선한 가을 날씨처럼 분당 서울대 병원 앞에는 단풍나무들이 낙엽을 뿌리고 있다. 

분당 서울대 병원의 모습은 40년 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병원 옥상에 구급 드론과 드론 택시가 수없이 이착륙을 한다. 

병원 앞에 무인 자동차들이 기자들을 내려놓고 병원 주차장을 향한다. 

 

방송국 직원들이 분당 서울대 병원 앞에서 방송 장비를 세팅한다. 

AR 카메라를 든 촬영 기자 앞에 방송 기자가 리포팅을 한다.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지난 2023년 국내 최초의 냉동인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10명의 참여자 중 ㅈ유일하게 해동 후 회복한 이정훈 씨가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는 순간입니다. 

2023년 8월 경 교통사고로 경추 손상을 당하고 식물인간 상태였던 이 씨는 2023년 정부의 냉동인간 극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2060년 36년 만에 해동되어 경추 신경 장기이식과 신경 회복 시술 후에 극적으로 회복했습니다."

 

자동문이 열리고 병상에 정훈을 향해 머리가 희끗한 주치의가 다가간다. 

"기분 어떠세요?"

"네. 좋습니다."

"기억 신경 데이터 분석을 보면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떠세요? 과거 기억이 분명하게 떠오르시나요?"

"아니요. 아직도 선명하지 않은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려고 하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그러실 겁니다. 그럴 때는 바로 진통제를 처방할 겁니다."

"그럴 때마다 병원에 와야 하나요?"

"하하하. 아직 많이 모르시죠. 36년 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제 나이가 70인데 지난 36년간의 변화는 지난 300년간의 변화를 뛰어넘는 것이니까요. 너무 욕심부리지 마시고 차근차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바랍니다. 댁에 가시면 전신 스캐너가 있을 겁니다. 그것을 통해 원격 진료를 받으시고 스캐너로 투약도 끝납니다."

 

정훈은 주치의를 따라온 간호사를 바라본다. 

"혹시... 인간이신가요? 아... 죄송합니다. 실례를 한 것 같네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지로입니다."

"지로? 그게 뭔가요?"

주치의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지능형 로봇을 줄인 말입니다. 이제 많은 분야에서 지로가 인간과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과거에 재직하셨던 검사 분야도 인간 검사와 지로 검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앞으로도 충격받으실 일이 많으실 거예요. 그리고 냉동인간 프로젝트 회복 첫 사례자이기 때문에 저희도 부족한 것이 많을 거예요. 선생님과 저희 의료진이 협력해서 좋은 연구 모델을 같이 만들어 보죠.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정신적으로 많은 혼란이 있으실 거예요. 여기 오신 김선아 선생님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

김 선생은 정훈을 향해 다가간다. 정훈은 가볍게 목례를 한다. 

"혹시 지로신가요?"

"하하. 저는 아닙니다. 앞으로 저와는 정기적으로 상담을 하실 거예요. 어려움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세요."

정훈은 혼란스럽다. 

36년 동안 너무나 변해버린 세상에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 순간 작은 상자가 공중에서 다가온다.  문이 열리자 주치의는 음료를 꺼내 정훈에게 건넨다.  

정훈은 그 순간에도 신기함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AI가 지배하는 2060년 36년 전의 과거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두렵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흔들리는 정훈의 시선을 고정시킨 것은 자동문이었다. 

문이 열리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선다. 

정훈의 눈이 빛난다. 

 

36년 세월의 장벽을 한 순간에 넘어서서 정훈은 혜지를 알아챈다. 

"여... 보.."

그녀의 기억 속의 그 모습 그대로인 정훈을 보면서 늘 마음속으로 불러 보았던 호칭을 부른다. 

하지만 정훈은 기억 속의 혜지와는 너무 다른 모습에 정훈은 선뜻 말을 하지 못한다. 

 

"아... 버... 지"

35세의 나이에 멈춰버린 정훈의 외모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다빈이가 아이를 안고 정훈을 향해 다가간다. 

"다... 빈... 이?"

정훈의 시선은 다솔이를 향한다. 

"다솔이?"

다솔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보다 젊어 보이는 아빠에게 다가간다. 

어색한 표정으로 가족들은 젊은 아빠 정훈을 향한다. 다솔이는 정훈이 내민 손을 잡는다. 

36년간 혼합현실과 지로를 통해 재현했던 차가운 아빠가 아닌 체온이 느껴지는 손을 잡자 다솔의 눈물에서 36년간 고이 간직한 눈물이 흐른다. 침대에 앉아 있던 정훈과 다솔이 불편한 자세로 포옹을 하고 다빈과 혜지가 뒤따른다. 

 

몰려드는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정훈 일행은 드론 택시를 이용한다. 병원 측은 냉동인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홍보하기 위해서 기자회견을 주선했지만 주치의는 아직 완벽하게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 노출을 자제하자고 병원장을 설득했다. 

 

정훈은 창문을 통해 멀어지는 병원을 바라본다. 

그리고 정훈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느끼면 고개를 돌린다. 

혜지와 눈이 마주친다. 

가까이에서 본 혜지의 눈가의 주름이 선명하고 미소 짓는 입가에도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70세가 넘은 할머니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중년이 넘어선 연륜이 느껴진다.

정훈은 순간 36년을 기다려준 혜지에게 익숙해지려고 마음을 다잡는다. 

살며시 혜지의 손을 잡는다. 

36년 전 어린아이처럼 작은 손은 여전했지만 얼굴보다 더 세월을 숨길 수 없는 손을 바라보면서 정훈은 속삭인다. 

"어떻게... 36년을... 당신이 나를 잊고 재혼했더라도 나는 원망하지 않았을 거야."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정훈은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다. 

"당신이 나에게 존대를 한 적이 있었나? 존댓말을 들으니 어색하네. 나는 사고 나기 직전의 당신을 기억하는데 당신은 36년 동안 켜켜이 쌓은 세월의 기억이 있겠지."

"그러게. 아까 당신 만나고 화장실에서 내 얼굴을 봤어. 당신은 이렇게 늙은 아내가 어색하지 않아?"

정후은 짐짓 큰 미소를 지으면서 혜지의 손을 강하게 잡으면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빠르게 속도를 내는 드론 택시에서 병원은 점점 더 멀어진다. 

다솔과 다비의 자율주행차가 드론 택시를 따라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정훈은 드론 택시 창을 통해 변해버린 서울의 모습을 바라본다. 

순간 많은 궁금증이 몰려온다. 

분단된 한반도는 어떻게 되었는지?

미국은? 중국은? 그리고 일본은?

궁금증이 증폭될 무렵 드론 택시는 착륙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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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뉴스 보도를 본다. 

주변에 비서실장도 함께 있다. 

40년 만에 냉동인간이 해동되어 회복했다는 소식을 앵커가 전한다. 

지로 기자가 리포팅을 한다. 

 

"이정훈!"

대통령이 이정훈이라는 이름을 되뇐다. 

"대통령님 이정훈 씨에게 축전을 보낼까요?"

"당연하죠. 축전하고 선물도 함께 보내시죠."

 

비서실장이 방을 나가자 대통령은 다시금 그의 이름을 되뇐다. 

"이정훈이라..."

 

'서기 2060' 제 1 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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