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PTA의 작품이다.
Paul Thomas Anderson. 많은 사람들이 천재 감독이라고 칭한다.
부기나이트, 매그놀리아 등 90년대 후반기 그의 초기 작품부터 그런 칭호가 붙어 다녔다.
하지만 필자는 요즘 영화 유튜버나 일부 평론가들의 데이터를 소비하는 듯한 평론을 하고 싶지는 않다.
전작의 스토리를 삽입하면서 많은 데이터를 나열하여 신작을 설명하는 방식은 필자의 방식이 아니다. 실제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데이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영화의 호, 불호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토마스 핀천의 바이랜드라는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라는 정도의 정보만 제공하고 이 작품에 대한 평론을 시작한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대한 혁명을 다룬 이야기이다.
특히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모든 형태의 편견과 혐오를 타파하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흑인 레지나 홀 (디안드라 역)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밥 퍼거슨 역)의 '프렌치 75' 혁명가들과 그들을 쫓는 숀 펜 (록조 역)과 '크리스마스 모험'이라는 반혁명 순혈주의 집단의 전투를 그리고 있다.
흑인과 이민자로 대표되는 유색인종, 여성, 이교도, 유대인 등의 편견과 그와 함께 동반하는 혐오를 정의롭고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모든 것을 파괴해서라도 바꾸고 싶어 하는 '프렌치 75' 혁명주의자들의 20년에 가까운 스토리가 전개된다.
또한 사회적 메시지에 국한하지 않고 그 메시지를 실현시키는 메신저에도 집중했다.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려 하지만 내재적 욕망과 미성숙한 인간성에 의해 발생하는 모순과 역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모성애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부성애는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중요한 테마이다. 특히 영화 후반부를 지배하는 세 명의 남자와 한 소녀의 이야기는 극적 긴장의 중요한 모멘텀이 된다.
부조리한 사회에 반기를 든 혁명의 이야기와 그 혁명의 반동으로 발생하는 반혁명의 순혈주의까지도 이 영화를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마지막 숀펜의 연기는 어떠한 흠결도 용서하지 않는 순혈주의의 배타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가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빌드업의 지루함을 느낄 때 즈음이면 다시금 긴장을 야기하는 시퀀스가 등장한다. 마지막 결말까지 이런 전개는 지속된다.
하지만 영화를 전반적으로 평가했을 때 이 작품이 치밀한 구성과 딜레마 상황을 극복하는 상상 이상의 창의력이 돋보인다고는 말하기 힘든 점이 있다.
다음 장면을 예측하기 힘든 전개 방식이 창의적으로 느껴지지만 모든 전개에서 관객들에게 납득을 끌어낼 만큼 치밀한 구성과 스토리를 자랑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듯이 지루할 때쯤 등장하는 새로운 시퀀스에 작품이 도파민 주사를 맞는 듯한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작품의 완성도가 완벽하다거나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런 구성이 PTA 작품의 특징이라고 데이터를 들이 밀겠지만 관객들은 바로 이 작품에만 집중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물론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의 미덕을 충분하게 보여주었다. 극적인 순간에 보여주는 블랙코미디의 역설은 충분히 골계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골계미 속에 흐려진 개연성의 부재는 유머 뒤에도 끝까지 잔상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이 영화에 엄청난 찬사를 보낼 수는 없다. 혹자는 PTA의 전작과 함께 이 영화를 칵테일로 소비해서 N차 관람을 유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여러 번 보고 납득할 수 있는 영화라면 결코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결코 봐서는 안 될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편견과 혐오의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영화를 직접 관람하고 관객 스스로가 영화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하고 싶다. 관객의 정확한 판단을 흐리는 애매모호한 평론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정상참작을 해 주리라 믿는다.
p.s. 최근 천민자본주의식 마케팅에 의거한 영화 홍보가 지나친 것 같다. 이 영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오히려 홍보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필자는 천민자본주의식 영화 마케팅이 영화 산업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평론 말미에 필자의 견해를 덧붙인다.
■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모든 형태의 편견과 혐오를 타파하는 혁명 이야기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편견이 있다. 흑인과 이민자를 대표하는 유색인종, 여성, 이교도 등과 좀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유대인까지 참 많은 편견과 혐오의 대상이 있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런 혐오의 대상자들이 미국 사회를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서, 완벽하게 바꾸려고 시도하는 혁명 스토리를 담고 있다.
여성과 흑인에 대한 편견은 레지나 홀 (디안드라 역)의 화장기 없는 얼굴과 남성 못지않은 피지컬, 특히 임신한 몸으로 기관단총을 연사하는 파격적인 장면을 통해 타파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밥 역)와 레지나 홀의 사랑은 한 때 미국 사회의 금기였던 다른 인종 간의 결합에 대한 도전이었다.
'프렌치 75' 혁명가들은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파괴와 전복을 통해 오랜 세월 미국 사회를 지배했던 편견과 혐오를 되갚아 주려한다.
(필자는 '프렌치 75'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대포라는 데이터의 제공을 경계한다. 또한 이것이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상징으로 영화에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는 정보 제공도 경계한다. 또한 '프렌치 75"라는 칵테일이 있다는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런 식의 평론을 데이터를 소비하는 평론으로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데 이런 정보까지 알아야 하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무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관객을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하지만 역사가 늘 증명하듯이 혁명에 반동하는 미국 사회의 주류이자 반혁명 세력의 준동 또한 만만치 않다. 크리스마스 모험가들의 무차별적인 응징은 이 영화가 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지속적인 또 다른 전투)인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특히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등장한 미국 내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차별과 혐오의 어젠다에 대한 혁명 스토리는 분명 시의적절하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에는 메시지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의 내재적 욕망과 불완전한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인간의 내재적 욕망과 불완전성, 그리고 일그러진 부성애

사회는 구조적 모순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사회를 지배하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모순을 정면으로 노정하고 있다.
정의를 부르짖던 혁명가들의 비겁함과 남성성을 상징하는 반혁명주의자들의 비열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한 혁명과 반혁명 집단에 존재하는 순혈주의적 배타성 또한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숀 펜(록조 역)의 연기는 집단 속에서 도구로 전락하는 인간의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모성애에 대해서도 혁명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모성애도 또 다른 편견임을 보여준다.
영화 중반 이후 세 명의 남자와 소녀의 이야기는 부성애를 능가하는 모성애에 대한 편견 또한 혁명적으로 타파해 버린다. 작금의 사회를 지배하는 모든 것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려 하지만 어느 것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부조리 또한 드러내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공허한 메아리보다 현실을 반영한다.
이 영화는 어렵지 않게 관객들에게 메시지와 메신저를 드러내고 관객들에게 의문을 던진다. 혹자는 그 의문을 어렵게 인식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만 있으면 그 의문 또한 그렇게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를 완벽한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떨떠름한 구석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모든 사람이 봐야 한다고 도시락 싸들고 추천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 블랙코미디적 요소로 묻어 버리려 하지만 끝가지 잔상으로 남는 치밀한 구성의 부재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다분하다.
작품 시작부터 상대를 내적으로 무너뜨리는 가학적인 성적 묘사 또한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가미되어 너무 거칠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반혁명 세력의 순혈주의에서 살아남으려는 숀 팬의 연기는 씁쓸한 골계미를 충분히 선사해서 썩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다.
이런 컷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감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요소 때문에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개연성의 부족이나 치밀한 구성의 부재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혹자는 영화에서 개연성만 추구하면 다큐를 찍지 왜 영화가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이 점에 대해 완전히 반론을 제기하기 힘든 면이 분명히 있다.
영화적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개연성의 부족을 이해할 수도 있다는 주장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모든 것을 설명하자면 영화가 끝없이 늘어진다고 하소연하는 감독도 많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개연성 부족으로 끝나지 않고 구성이 치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그 잔상은 이 영화에 대한 나쁜 인상을 남게 하는 주된 요소가 된다.
관객들은 영화에서 맞닥뜨리는 딜레마 상황에서 작가나 감독이 어떻게 이를 돌파하는지 기대한다. 그때 관객의 기대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데우스 엑스 머시나 (문학 작품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한 국면 타계를 일컫는 라틴어 Deus Ex Machina)로 교묘하게 피해 가는 것을 관객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마지막 장면의 딜레마를 타계하기 위해 등장하는 엄청난 굴곡의 도로와 같은 치밀한 구성이 영화 전체에서는 많이 생략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 아주 높은 평점을 줄 수 없다. 혹자는 한 번 보고 잘 이해할 수 없다면 N차 관람을 하면 "이 영화의 가치를 더욱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이왕 나왔으니 말하자면, N차를 관람하든 N+1차를 관람하든지 관객의 자유다. 하지만 평범한 관객들은 그런 호사를 누리는 것은 쉽지 않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 (이 영화가 N차 관람을 유도하는 마케팅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평할 때 감독의 전작도 언급하지 않는데 다른 이야기로 새는 것 같아 아쉽지만 작금의 양태가 너무 안타까워서 말을 보태지 않을 수 없다. 이번만 이해해 주기 바란다.
관객들은 단 한 번의 관람으로 강력한 여운과 잔상이 남기를 기대한다. 어떤 관객들은 그 여운과 잔상 때문에 다시 영화를 보는 것을 저어하기도 한다.
1000만이 넘었던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나 '기생충'은 단 한 번 관람했지만 아직도 영화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나기도 한다.
하지만 1000만이 넘은 범죄를 주먹으로 다스린다는 어떤 영화는 시리즈가 제작되었지만 관람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영화의 시리즈가 1000만을 여러 차례 돌파한 것이 한국 영화에 도움이 되었는지 의문스럽다.
물론 이런 수준의 영화가 관객 1000만을 돌파한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영화 산업을 위태롭게 만든 측면이 있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이것도 관객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에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이 영화도 N차 관람을 유도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결국 관객의 선택에 의해 외면당하는 결과가 분명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천민자본주의식의 마케팅을 펼치는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 영화사에서 N차 관람을 유도하기 위해서 유튜버나 일부 평론가를 동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가는 측면이 있다. 영화에 대한 각종 데이터를 제공해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N차 관람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좋은 영화는 단 한 번만으로 관객의 평생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어쩌면 최근 N차 관람 마케팅은 "철저한 자본주의의 가스라이팅의 단면이 아닐까?" 필자는 그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영화관 대부분을 차지하고 만원 할인권이 있어도 예매 1위 자리를 넘겨준 어떤 한국 영화를 보면 감독과 배우 프리미엄이 너무 심한 것 같다.
아쉬운 점은 이런 마케팅에 일부 유튜버와 평론가가 동원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필자의 단순한 의혹에 불과하거나 일부 유튜버나 평론가의 인지부조화적 확신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식의 마케팅이 영화 산업을 좀먹는다는 것을 영화인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유튜버나 평론가들에 의해서 부풀려진 평론을 보고 영화를 보았다가 단순히 실망스럽다가 아니라 욕이 나온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영화에 대한 신뢰는 더욱 무너질 것이고, 한 번의 마케팅의 욕심 때문에 영화 산업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관객들마다 호, 불호는 갈릴 수 있다. 따라서 영화 평론 또한 다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서는 불순한 평론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그 결과는 관객들에 의해서 반드시 증명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천민자본주의 마케팅에 지나치게 함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영화 유튜버나 평론가도 좀 솔직했으면 한다. 점점 어려워지는 영화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서라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에 대해 정보 전달에 있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이런 비판에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영화 산업의 신뢰를 깎아먹는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보다도 영화 유튜버나 평론가들이 필자의 이야기의 진의를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분명하게 언급한다. 관객들에게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영화, 비추하고 싶은 영화, 관객 스스로가 평가해야 하는 영화, 평가가 불가능한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정보를 제공하고 평론가도 관객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관객들의 평가와 평론가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어떤 영화를 보면 평론가의 호평 때문에 영화를 보았다가 욕을 하는 관객들을 여럿 보았다.
최근 수 없이 많은 영화를 OTT로 관람하는 관객들의 수준을 폄하하고 뭘 모른다고 관객을 모독하는 비평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결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또한 관객들의 혹평 때문에 보지 않으려고 했다가 보았더니 너무 내 취향이라고 말하는 것도 분명 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관객이 평가해야 한다고 논리가 전개되면 도대체 평론가나 그들이 생산하는 정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천민자본주의적 마케팅을 경계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닌 것을 마케팅 차원에서 부풀린다면 영화 산업의 신뢰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에 호평을 할 때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평론을 하지 않는 것도 한 방편이다. 평론할 영화는 즐비하다. 영화 산업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무분별한 호평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에 대해서도 혹자는 관대하게 영화를 평가해 주어야지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동인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관대함이 통할 수 있는 작품에 대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중언부언해서 안타깝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작품에 대해서 비양심적인 평론이 영화 산업을 더욱 나락으로 빠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혹시 오해할 수 있는데,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천민자본주의식 마케팅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관을 많이 차지하지도 못하고 홍보도 너무 되지 않아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너무 사설이 길었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관객 스스로가 평가해야 하는 영화'로 평하고 싶다. 혹자는 비겁한 태도라고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 영화를 '관객 스스로가 평가해야 한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결코 영화를 보고 욕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강추한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은 시간도 버리고, 돈도 버렸다고 욕하겠지만 관객들에게 평가를 구한다면 결코 욕은 나오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필자는 힘들겠지만 분명하게 평하겠다. 물론 이에 대해서 지나친 자의식이라고 비판한다면 어쩔 수 없다. 영향력이 없는 사람의 꼴사나운 행동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필자의 평론을 통해 조금이나마 영화 산업의 신뢰가 더욱 축적되고 더욱 완성도 높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열정으로 이런 언급을 한다는 것만 알아주기 바란다.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비추하고 싶은 영화', '관객 스스로의 판단을 구하는 영화', 필자가 판단하기 어려워 '판단을 유보하는 영화'로 분명한 견해를 밝힐 것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에 영화 비평 수준이 부족한지 모르겠고, 보편적 관객의 수준보다 떨어져 비평을 논하기도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보편적 수준의 관객의 시선도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꾸준하게 평론하겠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대한 필자의 평점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다른 평론을 살펴본다면 매우 가혹한 평가를 하는 작품도 있지만 이 작품은 결코 그런 수준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관을 직접 찾아서 관객 스스로의 평가를 내려주기 바란다. 영화를 직접 보고 욕이 나온다면 필자가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필자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필자의 평론에 가혹한 평가를 내리고 싶다면 댓글로 의사 표시를 해 주었으면 한다. 앞으로의 평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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