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은 대한제국 의병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의 신하산 전투부터 초대 총감을 지낸 일본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까지를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부에서 안중근 장군의 10.26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의거를 테러로 폄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어불성설이다.
테러란 여러 가지 정의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정치적 목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들을 향한 폭력이다.
가장 보편적인 테러의 정의는 그 대상을 민간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을사늑약을 주도했고 그 후 초대 대한제국 통감을 역임하고 일본 추밀원 의장이라는 공직을 맡고 있었다.
안중근 장군은 대한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대한제국에 대한 불법적 병합을 추진하고 실제로 실현시킨 초대 총감이자 추밀원 의장인 이토 히로부미라는 상대국 수뇌와 수하로만 처단 대상을 한정했기 때문에 결코 테러라고 할 수 없다.
실제로 안중근 장군은 재판 중에 자신의 신분을 대한제국 의병 참모중장라고 누차 강조했다. 1907년 헤이그 육전조약에 따르면 민병이나 의병용단에도 교전자의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안중근 장군은 단순히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군인 신분이었다는 것인 명백하다.
또한 안중근 장군에 대해서 그를 폄훼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다. 특히 대한의군이라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1912년 결성된 대한의군부와 혼돈하는 주장을 하는 자도 있다. 심지어 31세의 나이에 현재의 3성 장군인 중장이라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는 주장을 하는 자도 존재한다.
전술한 것처럼 안중근 장군의 신분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 조직으로 결성된 대한제국의 의병이었다. 조선의 임진왜란 때 국가를 구하기 위한 의병 정신과 같은 차원에서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 침략 국가에 저항하려는 레지스탕스였다.
군인으로 조선조의 의병을 근대국가의 명칭인 의군으로 이해하고 대한제국 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칭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국민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새로운 명칭인 초등학교라고 칭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의군 즉 대한의군으로서 조직을 갖추고 병력을 조직하여 신하산 전투 등에서 활약한 것은 분명 그를 군인 신분으로 이해하고 그 명칭을 대한제국의 의군을 줄여 대한의군 칭하는 것은 타당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불법 비상계엄 확대에 저항한 시민군을 군사 쿠데타 세력은 폭도라고 칭했다. 하지만 불의에 항거한 시민 저항권을 행사한 민주화 운동 시민 군사 조직으로 당대 시민과 후대 사관에 의해 시민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것처럼 대한제국 의병 혹은 근대적 개념으로 의군을 대한의병 혹은 대한의군이라고 칭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의병 혹은 의군 조직 하에서 계급체계를 현대 군대의 계급체계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연히 의병 혹은 의군의 물적,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현대 군대의 계급체계보다 단순화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현대 군대의 3성 장군과 동일시하여 대한의병 혹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는 계급을 폄하하는 것은 생떼에 가까운 것이다.
영화 '하얼빈'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 큰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평가받는 것이 합당하다.
필자는 일반적으로 영화를 평할 때 영화 이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경계했다. 그리고 영화 이외의 관점이 결부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영화에 대해 부정적 시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영화 '하얼빈'은 일반적인 필자의 영화평과 다른 관점에서 전개되었음에 양해를 부탁한다. 최근 친일과 독재에 매몰된 집단에 의해서 자행된 불법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다수 주권자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담고 싶은 강력한 욕망을 투영했음을 자인한다.
내란 수괴 윤석열의 부당한 명령에 무책임하고 무능하게 순응한 방첩, 특전, 수도방위 사령관들의 어깨에 새겨진 세 개의 별의 가벼움보다 31세의 대한제국의 의군 안중근 장군이 짊어진 참모 중장의 무게감이 더욱 고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 '하얼빈'은 앞이 보이지 않는 엄동설한에 견딜 수 없이 차갑게 얼은 강을 건너는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영화평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할 것 같다.
영화적 관점에서 안중근의 다양한 서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미래를 알 수 없는 국가의 장래를 홀로 짊어진 고독한 장군의 다층적인 심리적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영화 '하얼빈'은 평면적이고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영화 '하얼빈' 관람의 초점을 서사에 집중하느냐 심리적 흐름에 집중하느냐는 관람 후에 평가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최근 내란사태를 경험하면서 계엄군의 총탄 앞에서 광주 민중들의 고립감과 공포심을 추체험할 수 있었고, 나아가 앞이 보이지 않는 조국의 독립을 향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진 범상치 않은 영웅들의 주체할 수 없는 절대고독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장군의 의거 후 재판 과정의 다양한 서사를 완전히 배제했다. 서사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면서 감독은 국가를 위한 수단이자 스스로 목적적 존재인 인간 안중근의 다층적인 심리에 집중했다.
이를 이해한다면 영화는 느린 속도에 배제된 서사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누구나 결과를 알고 있는 10.26 이토 히로부미 처단일까지 짧은 시기를 길게 묘사한 느린 속도에도 지루함보다는 엄청난 내적 전율이 유지된다.
하지만 영화 '하얼빈'에 대해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최근 한국 영화의 트렌드에 대한 아쉬움일 수도 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에게는 그 어떤 소재보다 창의성을 요구한다. 역사적 팩트를 전혀 훼손하지 않고 역사적 여백에만 작가적 상상력 제한적으로 가미하는 딜레마에 진정한 창의적 연출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대부분 한국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는 역사 왜곡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나친 상상력을 허용하고 있다.
역사적 팩트를 훼손하지 않고도 관객을 만족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매우 어려운 시도를 포기하고 딜레마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통해 너무 쉽게 해결하려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있다.
영화 '하얼빈'에서 그런 장면이 있어 아쉬웠다. 안중근(현빈 분)과 우덕순(박정민 분)은 실존 인물이었지만 영화의 핵심 테마에 큰 비중이 있는 김상현(조우진 분), 공부인(전여진 분)을 만들어낸 것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가까운 쉬운 선택은 아니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혹자는 그렇게 영화의 소재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면 창의성은 말살되고 영화의 다양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역사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소재의 영화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단순히 모티브로 사용해서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불법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를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젊은 세대들의 다수가 역사를 인식하는 중요한 매체로 영화를 거론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역사를 소재로 하는 제작자들의 상당한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문제이다. 영화의 다양성과 역사 미디어로서의 책무를 대립된 개념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영화 관람 중에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어 있는 장면에서 몰입이 갑자기 깨지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필자의 우려를 이해할 것이다.
창의성이나 영화의 다양성이라는 명분하에서 자행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식의 역사 왜곡에 대한 필자의 우려에도 창작자들이 귀를 기울여 주기를 고대한다.
전체적으로 영화 '하얼빈'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영화로서 수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많은 관객들이 안중근의 절대고독을 추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불법 비상계엄과 내란으로 불면을 밤을 지내고 있는 필자가 영웅의 발자취를 쫓아가는 창작자의 수고를 망치는 횡설수설 평론을 한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들어 더 이상을 글을 써 내려가기가 힘들다.
내일 아침 이 영화 후기를 본다면 후회할 것 같아 서둘러서 영화 '하얼빈'에 대한 필자의 평점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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