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대 최고의 배우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혹자는 답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단언컨대 안소니 홉킨스라고 말한다.
누구나 은퇴를 말하는 나이까지 안소니 홉킨스는 결코 지치지 않는다. 특히 다른 배우와 앙상블을 이루던 혼자서 영화를 끌고 가는 '더 파더'나 '두 교황' 같은 영화든지 말할 것 없이 안소니 홉킨스는 자기만의 완벽한 연기톤을 유지하고 있다.
때론 연출력의 부재로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높지 않은 경우는 있지만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연기력은 그 누구의 추종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1991년 '양들의 침묵'의 광기 어린 한니발 렉터 박사 역에서 2024년 프로이트 역까지 안소니 홉킨스가 보이지 않고 한니발 렉터와 프로이트만 보이게 만든 독보적인 연기력의 소유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연극으로 공연될 정도로 매우 연극스러운 톤 앤 매너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대부분의 신이 프로이트 자택에서 프로이트(안소니 홉킨스 분)와 C.S 루이스(매트 구드 분)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기대하는 소재주의 영화나 액션이나 스릴러 물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분명 추천하기 저어할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캐릭터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음미하고자 하는 취양을 가진 시네필에게는 적극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를 만끽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안소니 홉킨스의 라스트세션이 막을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은 나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 프로이트에 완전히 빙의된 신들린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력
이미 연극으로 선보인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과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을 보면서 감탄했던 것은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의 속도였다. 일반적으로 80세가 아니라 70세 넘는 배우에게서도 느끼는 느린 호흡과 부정확한 발성은 86세의 안소니 홉킨스에게는 예외처럼 보였다.
매우 빠른 속도의 대사와 완벽한 발성을 보면 도저히 86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상대역이었던 매트 구드가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는 말이 결코 립서비스가 아닐 정도로 그는 출연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선생님이었다.
꼰대처럼 도드라지는 연기 선생이 아니라 배우라면 이렇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오감을 통해서 느낄 수밖에 없는 완벽한 연기였다. 그의 주름, 그의 흐린 눈빛, 그의 호흡이 연기의 일부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프로이트와 일체화되었다.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치매 노인으로 완벽하게 빙의되었던 영화 '더 파더' 와 베네딕토 16세를 완벽하게 소화했던 영화 '두 교황'에서 느꼈던 메서드 연기를 다시금 재현시켰다.
다른 배우들은 특정 배역에 의해 평생을 헤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영화 '양들의 침묵'의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의 모습은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일부분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무신론과 유신론, 성과 죽음, 유아기의 아버지의 역할 등 프로이트 심리학의 화두 집약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프로이트 심리학의 화두의 집약체이다. C.S 루이스 박사와는 무신론과 유신론 언쟁을 강렬하게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위트 있는 유머를 선사한다.
특히 프로이트를 상징하는 성과 죽음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되었다. 특히 유아기의 아버지의 성역할에 집중한 프로이트 심리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지그먼트 프로이트와 그의 딸 안나 프로이트와의 관계를 통해 이 영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 표출되었다.
특히 구강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프로이트와 전쟁 트라우마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 C.S 루이스가 193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공포를 다룬 부분은 프로이트 심리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가장 비판받고 있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성역할 부재로 정상적인 정신발달의 지체 현상으로 규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교묘하게 피해 가면서 그의 딸 안나와 도로시의 관계를 통해 적어도 프로이트가 그 현상을 인정했음을 분명히 했다.
어쩌면 안나의 비정상적인 아버지에 대한 집착은 프로이트가 언급한 '오류투성이의 인간'이 바로 자신임을 역설적으로 영화는 웅변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보다는 모순과 오류에서 예외일 수 없었던 인간 '프로이트'를 통해 그의 내면의 다면성을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보여 주었다.
시거를 빠는 자신을 항문기나 남근기에서 구강기로 퇴행했다고 유머를 구사하는 장면처럼 대사를 통해 감독은 프로이트 심리학의 단면들을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접근하도록 하는 기제를 제공한다.
따라서 사전에 프로이트나 루이스에 미리 알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영화 관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삶과 심리에 대한 영화이지 프로이트 심리학 강좌는 아니기 때문이다.
■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평점
이 영화를 매우 지루하게 여길 관객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전술했던 것처럼 액션과 스릴러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인물의 심리와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110분의 러닝타임이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필자는 간혹 매우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영화의 재미를 측정한다. 매우 피곤한 상태로 늦은 밤시간에 본 영화에서 한 번도 졸지 않는다면 그 영화는 적어도 상당한 재미를 준 영화라고 측정한다.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밤 12시가 넘어서 끝난 영화였다. 그리고 필자의 몸은 매우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졸지 않고 프로이트와 안소니 홉킨스의 만남을 즐겼다. 그래서 평점은 비교적 후하게 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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