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경험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보면서로 그런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영화 '한공주'를 보면서 처음으로 그런 경험을 했다.
답답하고 더러운 느낌이 한 동안 가시지 않았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실화 사건 때문에 넷플릭스 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영화 '한공주'를 접했다. 이 영화가 끔찍한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라는 사실 정도만 알았지, 큰 정보는 없었다.
개봉관에 보지도 못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을 때도 필자는 이 영화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 굳이 찾아서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넷플릭스를 서핑하다가 영화 '한공주'를 클릭하게 되었다.
영화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끔찍한 사건을 처리하는 감독의 거리 두기가 감탄스러웠다.
그래서 더욱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크라이맥스에 진입할 때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답답하고 더러운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이런 불쾌한 영화에 여운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상당 시간 동안 여운을 느꼈다.
그리고 심지어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인간들이 이 영화를 보기를 희망한다.
심지어 고릴라도 이 영화를 보기를 바란다.
결코 고릴라가 인간이 될 수는 없지만 고릴라와 인간 모두 그들의 잘못을 영원히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공주가 느꼈을 고통의 만 분의 일이라고 공감했으면 한다.
영화가 끔찍한 사건을 온전히 담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수진 감독은 담대하게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피해자와 그 피해자의 고통을 함께한 천우희에게 미안함과 위로를 전하고 싶다.
같은 인간으로서...
이 문제를 젠더 이슈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코 고릴라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고통받은 인간을 위로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영화 '한공주'는 끔찍한 사건을 자극적으로 다룬 상업영화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위로를 건네는 따뜻함이 묻어나는 영화다. 그래서 권하고 싶다. 인간과 고릴라 모두에게...
■ 특정 사건에 호소하지 않고 영화 그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는 영화 '한공주'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많은 영화는 대부분 관객들을 실망시킨다.
그 사건을 온전히 담으면서도 영화적 완성도가 높은 영화를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한공주'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말았다.
왜 개봉관에서 보지 않고 넷플릭스 서핑하다 보았는지 안타깝고 미안하기까지 하다.
영화 '한공주'가 끔찍한 사건을 다루면서 영화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역량 때문이었다.
감독은 사건과 영화 사이에 적절한 거리두리를 했다.
실화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감독과 작가가 영화와 사건 사이의 거리 두기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한공주'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경험을 느끼게 하면서도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만약 감독이나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관객들에게 주입시키는 장치나 대사를 난발했다면 영화 '한공주'에서처럼 몰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동시에 관객은 좋은 모티브를 망친 감독이나 작가를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한공주'는 감독이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특정 생각을 주입하지 않는다.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충분한 '거리두기'에 성공했다.
■ 한국 영화의 지표를 제시한 영화 '한공주'는 젠더 영화가 아니라 휴머니즘 영화
영화 '한공주'는 힘든 여건에서 촬영한 영화였다.
블럭버스터 영화에 비해 초라한 제작비에 이런 걸작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에 감탄한다.
영화 '한공주'의 주인공 천우희 배우는 청룡영화제 여우 주연상 소감과 이후 인터뷰에서 열악한 촬영 여건에서도 모두가 마음을 모아서 만든 작품임을 강조했다.
어쩌면 영화 '한공주'는 현재 위기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 지표를 제시하는 듯하다. 검증된 감독과 배우를 통해 안정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천민자본주의적 영화만 난무하는 현 상황에서 영화 '한공주'와 같은 실험적 창의성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특정 사건이나 이슈를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상업주의적 측면만으로는 결코 좋은 영화를 완성할 수 없다는 교훈을 분명히 주고 있다. 사건을 진정성 있게 대하는 작가 정신이 자본주의적 이익 창출보다 선행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관객 22만 명에 그친 영화 '한공주'가 다시금 회자되는 것은 특정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만약 영화적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좋은 소재를 망쳤다고 비난할 것이다.
너무 비극적인 사건을 영화적 측면에서만 다루는 것 같아 실망한 독자도 있겠지만 영화는 영화로서 가장 먼저 이해하고 소비되어야 한다. 어떤 사건의 교훈을 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해서는 안 된다.
좋은 모티브를 완성도 있는 영화로 만드는데 실패하면 그 사건의 메시지도 결국 희석될 수 있다는 책임의식을 영화 산업 종사자들이 인식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울러 영화 '한공주'에서 다루는 이슈를 젠더문제로 국한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배격한다. 영화 '한공주'는 젠더 이슈를 다룬 영화가 아닌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룬 '휴머니즘' 영화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 영화 '한공주' 평점
다시 한번 이 영화를 개봉관에서 보지 않은 것에 미안함을 표하고 싶다.
그 미안함과는 별개로 객관적으로 평점을 매겼다.
좋은 영화에 걸맞은 평점인 듯싶다. 그리고 이 영화를 19금으로 한정 짓지 말고 청소년 교보재로도 활용했으면 싶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 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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