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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탈주 솔직후기 - 황순원의 '학'을 떠올리게 하는 부조리 영화

bonanza38 2024. 7. 4. 21:33

영화는 상상의 예술이다. 

그러나 어떤 상상은 너무 개연성이 없어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있다. 

 

영화 '탈주'가 그런 작품이다. 북한을 탈출하려는 한 청춘의 상상은 너무나 개연성이 없다. 

북한에 대한 고증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고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GP가 아니라 GOP에서 군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되는 비무장지대의 전경을 보면서 개연성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탈주'를 보면서 말도 안 되는 상상력에 고개를 돌리기보다는 왠지 모를 끌림을 느끼며 영화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뻔한 결말을 예측하면서도 긴장감이 유지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심지어 그런 장면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클라이맥스에서도 관객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한 방을 터뜨린 비결이 무엇인지 해부하고 싶다. 

 

영화 '탈주'의 청춘은 북한에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서 고뇌하는 많은 청춘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사회적 억압과 실존적 부조리 속에서 청춘은 어느 방향을 향해 가야 하는지? 그 길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라고 소리친다. 

 

지금도 교과서에 수록된 소설인지 모르겠지만 황순원의 '학'을 연상하게 만드는 장면에서 사슬처럼 묶인 사회적 억압과 인간의 실존성의 부조리가 영화 저변에 깔린 철학적 배경이 강요하지 않고 뇌리에 스며든다. 

 

물론 만듦새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감독과 작가의 철학적 고뇌와 상상력을 비난하고 싶지 않기에 비교적 후한 평점을 주고 싶다. 

 

무엇보다도 개연성 없고 뻔한 결말에도 끝까지 관객의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일조한 배우들의 연기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하루에 영화 두 편을 보면서 한 영화에서 느낀 실망감을 영화 '탈주'에서 만회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영화의 위기와 희망을 동시에 느낀 날이어서 양가적 감정을 지닌 채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개연성 없고 뻔한 결말의 영화 '탈주'에서 긴장감을 느낀 이유는?

 

영화 '탈주' 공식 예고편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켑처

 

영화 '탈주'의 고증은 엉망이다. 아니 엉망을 의도한 듯하다. 

특히 비무장지대 풍경은 GP에서 군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도무지 개연성을 느끼게 할 수 없는 설정이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작가나 감독의 상상력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영화 '탈주'에서 분명히 있다. 

특히 뻔한 클라이맥스와 결말을 보고도 식상함을 느끼기보다는 한방을 맞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영화 '탈주'는 고증을 뛰어넘은 철학적 배경을 내재한 영화이다. 

사회적 억압과 실존적 고뇌라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 방황하는 두 청년이 관객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특히 규남(이제훈 분)과 현상(구교환 분)이 뒤엉키는 크라이맥스에서 황순원의 '학'에서 제기하는 철학적 질문을 곱씹을 수 있다.

 

이데올로기라는 사회적 억압 속에서 마치 학이 날갯짓하듯 자유를 향해 날아오르려는 덕재를 놓아주는 성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말 오랜만에 소설 속에서 느꼈던 철학적 질문이 반추되었다.  

 

더 대단한 것은 영화의 크라이맥스를 흘러간 신들이 희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감독이 고증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영화 '탈주'가 북한군에 국한하지 않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지구인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쪽의 청년들에게도 사회적 억압 속에 실존적 고민은 상존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청춘들에게도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군의 복장이나 비무장지대에 대한 정확한 고증은 어쩌면 의미 없는 일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를 데이터로 소비하는 일부 영화유튜버들에게는 허점 투성이의 영화이겠지만 영화 내면에 담긴 철학적 질문에 답하고 싶은 평론가라면 설정과 고증에 대한 시비보다는 현대사회가 노정하는 철학적 긴장감을 투영한 영화의 본질에 집중한다.  

 

허술한 만듦새를 만회하는 이제환과 구교환의 연기력

 

영화 '탈주' - 출발 비디오 여행 캡처

 

영화의 만듦새는 완벽하지 않다. 이제환과 구교환의 사투리도 왠지 모르게 엉성하다. 

마치 좀비처럼 죽었다 살아남을 반복하는 전개도 허술하다. 

 

하지만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이 이율배반은 어떤 감정인가? 

영화가 제시하는 철학적 질문에 감독과 배우가 정확하게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술한 고증의 부재를 의도했다면 천재적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운이 좋은 것이지만 어쩌면 완벽하고 철저하게 북한을 모사하는데만 집중했다면 영화가 제기하는 주제의식이 희석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훈과 구교환도 전형적 북한군에 대한 선입견에 매몰되기보다는 동시대 청춘들의 고민에 천착한 연기에 집중한 흔적이 역력하다.

 

남한 노래 '양화대교'를 듣는 공감하는 규남을 연기한 이제훈과 피아니스트를 포기한 당간부 현상을 연기한 구교환은 북한군이 아니라 지구에 보편적인 청년을 연기하는 충실했다. 

 

그래서 들뜬 바느질과 허술한 마감질에도 영화의 주제의식은 도드라졌고, 그 주제의식을 따라가는 관객들은 긴장감을 느끼면서 크라이맥스에 안착할 수 있었다. 

 

■ 영화 '탈주' 평점과 한국 영화의 가능성과 위기감

같은 날 영화 두 편을 한꺼번에 보았다. 한 영화는 말도 안 되는 F급 병맛 코미디 영화가 끝내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좀비 영화로 귀결되는 영화였다. 영화 내내 졸다가 깨기를 여러 번 했지만 끝날 생각을 하지 않은 영화였다. 

 

그 영화에 못지않게 개연성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친 영화 '탈주'를 보면서 그 코미디 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한국 영화의 가능성과 위기감을 동시에 느끼는 하루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상상력의 나래 속에서 어떤 영화는 시간을 때우기보다는 죽이는 것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고 어떤 영화는 묵직한 뭔가를 느끼게 했다. 

 

적어도 한국 영화를 보면서 가능성과 위기감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갖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가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몇 영화는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흘려가는 물줄기를 간신히 돌리려는 시도에 일조하는 듯하다. 상업성에만 매몰되지 않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영화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영화 '탈주'는 그런 면에서 최근 많은 영화에 가차 없이 주었던 5점 이하의 평점보다 높은 평점을 주었다. 그 의미는 충분히 추천하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의 주제의식처럼 영화 '탈주'는 영화 제작자를 향해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상업적으로 안전한 영화보다는 실험적 영화가 늘어날 때 한국 영화는 좀 더 건강해질 것이다. 

 

p.s.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본 노신사가 소설가 황순원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그때처럼 우연히 본 영화에서 황순원 선생님의 '학'을 반추하는 노스탤지어도 느끼게 해 주어 고마웠다. 

영화 '탈주'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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