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왜 happiness가 아니라 happyness일까?

bonanza38 2023. 9. 17. 14:11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실제로 행복을 쟁취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윌 스미스의 역작 '행복을 찾아서'를 주말에 권하고 싶은 영화로 추천한다. 

2006년도 작품이지만 각자도생에 내몰린 작금의 시대와 전혀 유리되지 않은 우리의 자화상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을 'The Pursuit of Happiness'가 아니라 'The Pursuit of happiness'라고 쓴 것이 이글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왜 이 영화는 happiness가 아니라 happyness로 표기했는지를 알게 된다면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도 행복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일까?

■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는 영화 -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달리는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분)- 유튜브 영화 사이트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산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이 영화는 많은 장면에서 크리스 가드너를 연기한 윌 스미스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누구나 처절하게 달리는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 분)를 보면서 "참 열심히 산다"라고 중얼거릴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 우리의 삶을 CCTV처럼 지켜본다면 그들도 우리에게 똑같은 말을 중얼거릴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목표를 달성하고 성공하지는 못한다. 극 중 크리스 가드너는 아무리 노력해도 잡을 수 없는 행복을 추구하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노정하고 있다. 머피의 법칙처럼 꼬일 대로 꼬인 그의 삶은 아주 사소한 것도 쉽게 이룰 수 없는 우리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찐 부자지간의 리얼한 연기, 내레이션이 진부하지 않은 드문 영화 

지하철에서 노숙하는 윌 스미스와 제이든 스미스의 찐 부자 연기 - 유튜브 트레일러

'행복을 찾아서'는 윌 스미스뿐만 아니라 그의 친아들 제이든 스미스의 아역 연기도 일품이다. 아마도 윌 스미스의 표정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그의 실제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친 아들은 앞에 두고 그의 감정은 윌 스미스가 아니라 완전히 크리스 가드너가 되었다. 

 

원작이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내레이션이 많이 활용되었다. 사실 내레이션으로 대충 상황을 설정하려는 얄팍한 시도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내레이션을 통해 주제 의식의 상당 부분을 투영한다. 특히 이 영화의 제목 'The Pursuit of Happyness'가 나오는 토마스 제퍼슨의 미국 독립선언서에 대해 내레이션은 위트 있게 언급한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o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it of Happiness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여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에 의해 양도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 권리 중에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가 있다.)

 

시종일관 꼬일 대로 꼬인 크리스 가드너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긴장의 끈을 놓칠 수는 없다. 폭력이 난무하지 않아도 그의 삶 자체에서 서스펜스와 스릴이 존재한다. 그의 자서전을 읽고 크리스 가드너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도,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사람도 영화를 보면서 결말을 예상한다. 어쩌면 자기 충족적인 예언을 한다. 그리고 그 예언은 적중한다. 하지만 누구나 알 것 같은 그 결말이 전혀 시시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분출하고 싶었던 카타르시스에 대한 대리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번, 두 번 아니 힘겨울 때마다 여러 번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영화이다.

정말 뒷맛이 개운한 영화이다. 

 

■ 그럼 숙제를 풀어보자. Happiness가 아니라 Happyness일까?

그럼 이제 숙제를 풀어보자. 이 영화의 제목은 왜 Happiness가 아니라 오타가 난 것처럼 Happyness 일까?

이에 대한 언급은 영화 초반부부터 등장한다 크리스 가드너의 아들이 다니는 빈민가의 아주 허름한 어린이집 담벼락에 바로 'The Pursuit of Happyness'라고 쓰여 있다. 그 누구도 happiness의 철자를 아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크리스 가드너가 철자를 바꾸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바꿀 생각이 없다.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담고 있는 명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다. 

노숙자 쉼터에서 양복을 입은 유일한 사람

여러분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오갈 데가 없어 지하철 화장실에서 하룻밤을 노숙하던 크리스 가드너는 처절하게 눈물을 흘린다. 아들을 재울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던 크리스 가드너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노숙자 쉼터를 알게 된다. 하지만 쉼터의 공간은 제한적이다. 

 

수없이 많은 노숙자들의 줄 속에서 유일하게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크리스 가드너뿐이다.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미국의 독립선언서에도 나오는 너무나 흔한 말 happiness의 철자도 모르면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 나오는 것처럼 행복은 창조주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즉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근근이 삶을 연명하는 자세로 살아서는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비록 크리스 가드너처럼 집이 없어 노숙자 쉼터에서 의탁하고 있지만 양복을 차려입고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방향으로 가야만 언젠가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의 철자가 happyness인지 happiness인지 모르는 사람, 즉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 설정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행복의 추구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 영화 '행복을 찾아서' 평점

스포일러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이 영화 말미에 실제 크리스 가드너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실제 크리스 가드너

우리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지만 실제로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0.001% 정도의 사람이 행복을 쟁취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누구도 행복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은 아닐까?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크리스 가드너처럼 엄청난 부를 거머쥐는 것이 행복을 쟁취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처절하게 천민자본주의의 노예로 복무하여 많은 재화를 획득하는 것만이 행복의 척도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영화의 주제는 명확하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happiness인지 happyness인지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명확한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99.999%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행복할 권리가 없는 것일까?

행복의 철자를 happyness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는 것인가?

 

필자는 이 영화의 주제와는 다르게 미국의 독립선언서의 생각에 더 마음이 기운다. 

설령 happiness의 철자를 몰라도, 양복을 입고 노력하지 않아도 태어나는 그 순간 인간은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라는 양도될 수 없는 권리를 지닌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재화나 명예의 유무에 상관없이 인간은 이 권리를 꿈꿀 자유를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각의 사람들이 지닌 무기력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만 전가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같이 짊어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자본이 없는 사람은 비루한 천민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아야만 마침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행복 추구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기를 희망한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짜임새가 있는 작품이다. 자극적인 요소가 거의 없음에도 극적 긴장감은 지속된다. 특히 결말이 예측 가능함에도 전혀 진부하지 않게 느껴지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주제 의식도 전술한 바와 같이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필자가 원하는 철학적 주제 의식과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 의식과의 상이함으로 1점을 깎는 무례함을 범함을 양해하기 바란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작품이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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