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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빈에게는 아직 파리올림픽 단체전이 있다 - 그녀는 이제 겨우 20살

bonanza38 2024. 8. 5. 03:15

필자가 싫어하는 말이 있다. 

'졌잘싸'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내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열심히 했지만 졌을 수는 있어도 졌으면 잘 못 싸운 것이지,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형용모순 같았다. 

 

그런데 그런 필자의 마음을 움직인 운동선수가 있다. 바로 신유빈!

올림픽 준결승 전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신유빈 선수가 연습했을 수 십만 번의 바나나 플릭과 스매시를 알기에 저절로 '졌잘싸'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중요한 것은 신유빈 선수는 겨우 20살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그녀의 전성기가 도래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중국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신유빈에게도 보강해야 할 많은 단점이 있다. 

그동안 중국의 벽을 넘었던 현정화, 유남규, 김택수, 유승민의 비결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또한 파리 올림픽에서도 아직 기회는 있다. 

파리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에서 신유빈이 전지희와 함께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던 복식 실력을 발휘할 수 있고 개인전의 설움을 만회할 기회도 주어진다.  

 

운동 스타는 단순히 실력만으로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 게임 매너 등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운동 스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탁구는 참으로 오랜만에 신유빈이라는 스타를 보유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원석을 더 완벽하게 세공해서 더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탁구 협회, 지도자, 팬들의 협업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졌잘싸'라는 말이 너무 어울리는 신유빈 - 파리올림픽 여자 개인 준결승전

 

파리 올림픽 여자 단신 동메달 결정전 신유빈 - 스브스스포츠 켑처

 

졌으면 잘못 싸운 것이지 졌지만 잘 싸웠다는 '졌잘싸'라는 말은 형용모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말을 정말 싫어했다. 열심히 했지만 잘못 싸워서 졌다는 '열잘싸' 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가대표 탁구 선수 신유빈의 파리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을 보고는 '졌잘싸'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3번째 게임에서 10-7이라는 게임 포인트에서 역전을 허용했을 때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녀가 수 없이 했을 바나나 플릭과 스매시 훈련을 통해 흘렸을 땀이 갑자기 공중으로 휘발되는 느낌이 너무 안쓰러웠다. 

 

결국 신유빈은 게임 스코어 2-4로 파리올림픽 여자 단식 동메달을 품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유빈의 파리올림픽 4강전과 동메달 결정전은 한 마디로 '졌잘싸'라는 말이 결코 형용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은 멋있는 한판이었다. 

 

■ 신유빈이 기억해야 할 파리올림픽 8강전의 멘털

 

 

8강전 승리 후 신유빈 - KBS 뉴스

 

 

그동안 신유빈의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운 점은 그녀의 멘털이었다. 어쩌면 멘털 그 자체보다는 멘털이 너무 쉽게 노출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파리올림픽 8강전에서 신유빈의 모습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 보였다. 그녀의 멘털이 흔들려 보였던 것은 승리하고 나서 코트에 주저앉은 후에 일어나서 눈물을 글썽였던 때가 유일했다. 

 

심지어 상대 일본 선수인 히라노 미우가 게임스코어 3-0으로 끌려가자 유니폼 교체를 핑계로 5분 이상 나타나지 않아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서 게임 스코어가 3-3이 되었을 때도 신유빈의 멘털은 흔들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경기를 하다 보면 멘털이 흔들릴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탁구 경기는 고도의 심리전이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상대에게 멘털을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신유빈은 파리올림픽에서 해 내고 말았다. 

 

게임 스코어가 3-3 동률이 되고 10-10 듀스에서 13-11로 경기를 끝낼 때까지 그녀는 멘털을 히라노 미우에게 노출시키지 않았다. 치열한 멘털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막판 접전에서 신유빈은 극적으로 4-3으로 승리하고 4강에 진출한 것이다.

 

선수로서 변모하기 가장 어려운 것을 해냈기 때문에 앞으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한다면 20살 신유빈의 전성기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신유빈의 장점 & 단점 - 중국 탁구를 넘었던 선배들의 비결

신유빈은 장점과 단점이 너무나 극명하게 노출되어 있다. 장점은 적절한 수비와 공격의 조화를 통해 안정적으로 게임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자신의 결정타보다는 상대에 실수에 의존해야 하는 단점으로 전환된다. 

 

즉 신유빈이 안정적으로 랠리를 펼쳐서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 낸다면 쉽게 승리할 수 있지만 동시에 랠리를 끝낼 수 있는 결정타를 가지고 있는 선수에게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 선수들이다. 중국 선수들은 신유빈의 랠리에 말려들지 않고 게임을 끝낼 수 있는 결정타를 가지고 있다. 

 

4강전에서 신유빈을 이긴 후 세계랭킹 1위 쑨잉사(24·중국)를 꺾고 파리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30살의 노장 천멍의 우승 비결은 결국 자신이 경기를 끝낼 수 있는 결정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유빈 vs. 천멍 파리올림픽 4강전 - MBC 뉴스

 

대한민국 탁구가 중국을 이겼던 때가 있었다. 여자 탁구에서는 비록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1993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 대회 단식 우승을 했던 현정화, 남자 탁구에서는 유남규, 김택수, 유승민이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바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격 탁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현정화는 5구 이상의 랠리를 펼치지 않았다. 심지어 2구나 3구 이내에 결정해 버리는 전진 속공 탁구를 구사했다.

 

현정화는 양영자와 함께 중국도 겁내는 '환상의 복식조'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1988년 서울 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획득할 때도 공격 탁구를 통해 중국 탁구를 무너뜨렸다. 

 

유남규, 김택수, 유승민 또한 강력한 드라이브(현재 명칭 탑스핀 드라이브)를 통해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는 공격 탁구를 통해 중국의 벽을 무너뜨렸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펜홀더 시대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신유빈의 세이크 핸드 그립과는 전술적으로 같을 수는 없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전술 변화가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신유빈이 익혀왔던 탁구 메커니즘을 전략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선수 생명을 건 모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해야 한다. 현재의 방식으로는 신유빈이 중국 탁구를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은 파리올림픽을 통해 증명되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신유빈의 장점인 바나나 플릭, 수비력과 함께 강력한 포핸드 공격 무기 장착이 필요하다. 천멍과의 준결승전에서도 신유빈의 포핸드 약점이 승패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신유빈의 서비스는 충분히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천멍을 괴롭힐 정도로 위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포핸드 공격력을 보강한다면 다음 올림픽에는 충분히 중국의 벽을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신유빈의 자신과의 싸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부상이 가장 골칫거리고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 전에도 거의 1년 이상 신유빈은 부상으로 시달렸다.

 

하지만 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신유빈의 몸은 벌크 업되었다. 체력 향상과 부상 예방을 위한 강력한 트레이닝을 한 몸이었다. 

 

경기 중간에 바나나와 각종 간식을 먹는 것도 나름대로 경기력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의 완벽한 체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부상을 방지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트레이닝 방법을 정착시켜야 하고 벌크 업한 체격에 걸맞은 체력 훈련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매우 어려운 요구 사항이지만 중국을 이기기 위해서는 라켓과 러버의 개발이 필요할 것이다. 과거 중국이 탁구에서 확실하게 세계를 제패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이질 러버의 개발이었다. 

 

매우 힘들겠지만 한국 탁구가 중국 탁구를 이기기 위해서는 훈련 방법이나 멘털 말고도 탁구 장비에 있어서 획기적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 점은 현실성이 어려운 요구일 수 있다.  탁구 장비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세계적 회사가 있는 상황에서 기술력이 전무한 한국 기업이 단기간에 기술 개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양궁의 경우에 우리 장비를 쓰는 해외 정상급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장기적으로 국산 탁구 장비 개발을 통해 선수 실력 향상과 산업적 측면에서 탁구 저변 확대의 인프라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양궁협회를 후원하는 현대자동차가 불량 화살을 골라내는 슈팅 머신을 AI와 결합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양궁 선수들의 훈련 파트너 로봇을 만든 것은 상당한 시사점이 있다. 

 

자동차 회사가 양궁 로봇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제조업 기술이 상당한 우리나라의 수준에서 중국 선수가 놀랄만한 이질 러버를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하지만 장비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이를 차치하더라도 과거 중국을 이겼던 한국 선수들의 비결을 신유빈에게 접목하는 묘책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공격 탁구의 선봉이었던 현정화, 유남규 해설위원들의 방송을 들으면서도 신유빈의 경기 스타일에 맞게만 해설할 수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대부분 바나나 플릭을 통한 안정적 랠리를 지속해서 상대의 실수를 유발해야 한다는 점을 해설위원들은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현재 신유빈의 경기 스타일에 맞게 전술을 세워야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신유빈이 기대주가 아니라 중국의 벽을 허물고 세계 정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할 시점이 되었다. 

 

그래서 다음 2028년 LA 올림픽에는 24세의 신유빈이 30살에 올림픽 챔피언이 된 천멍이나 쑨잉사, 아니면 다른 신예 중국 선수를 꺾고 올림픽 챔피언 될 수 있는 새로운 첨단 무기를 장착하기를 기대한다. 

 

5일부터 시작되는 파리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이 그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인성까지 훌륭한 탁구 스타 신유빈 - K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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