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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올림픽 최초 5개 전종목 금메달 석권 - 파리올림픽 성공 비결은?

bonanza38 2024. 8. 5. 18:32

양궁 국가대표 선수단이 파리 올림픽에서 올림픽 사상 최초로 5개 전종목 금메달을 석권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전종목 석권을 한 바 있지만 당시에는 혼성 단체전이 없었기 때문에 5 종목 석권은 최초의 기록이 되었다. 

 

또한 여자 양궁은 미국이 남자 혼계영 400m에서 중국에 져 11연패가 좌절됨에 따라 올림픽 단체전 10연패 동률을 이루었고, 2028년 LA 올림픽에서 우승한다면 전무후무한 세계 최초 올림픽 단체전 11연패의 가능성도 있다. 

 

남자 단체전도 3연패를 이루었고 개인전까지 싹쓰리하면서 대한민국의 양궁 패권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계 양궁의 패권국가가 되었는지 그 비결을 살펴본다. 

 

많은 코치들이 전 세계 각국의 지도자가 되어 한국 양궁의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 양궁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단순히 지도 방법이나 지도자의 역량으로만 한국 양궁 패권의 비결을 설명하기 어렵다. 

 

지도 방법, 지도자, 선수 저변, 첨단 장비 사용, 창의적인 훈련 방법 등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한국 양궁의 신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다른 스포츠 종목에 접목 가능성도 점쳐 본다. 

 

■ 대한민국 양궁 파리 올림픽 5 종목 석권  - 여자 단체전 10연패 달성 

 

김우진 남자 단식 우승 순간 - MBC 뉴스

 

대한민국이 양궁의 세계 패권국가임을 재확인했다. 

사상 최초로 5개 전종목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파리올림픽에서 달성했다. 

 

2016년 리우데자레이루 올림픽에서 전종목 석권을 했지만 혼성 단체전이 포함된 5 종목 석권은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가장 먼저 금메달 소식을 여자 단체전이었다. 

 

임시현, 남수현, 전훈영으로 구성된 여자 대표팀은 중국을 슛오프 끝에 게임 스코어 5-4로 제압하고 올림픽 단체전 사상 두 번째로 10연패를 달성했다. 

 

미국이 파리올림픽 400m 혼계영에서 중국에 패해 11연패에 실패함으로써 이제 단체전 11연패를 달성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팀은 대한민국 여자 양궁팀밖에 남지 않았다. 

 

아마도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앞으로 50여 년 간 올림픽에서는 달성하기 힘든 대기록이 될 것이다. 

또한 남자 단체전에서 김우진, 이우석, 김우진은 올림픽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뿐만 아니라 혼성 단체전에서 김우진, 임시현 조가 금메달, 여자 개인전에서 임시현이 금메달, 남자 개인전에서 김우진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양궁은 파리올림픽에서 전종목 석권이라는 대기록뿐만 아니라 선수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먼저 김우진은 대한민국 올림픽 사상 최초로 5개 금메달 보유자가 되었다. 

 

또한 개인전, 단체전,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모두 획득한 김우진과 임서현은 대회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한마디로 파리 올림픽은 대한민국 양궁이 만개한 대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만개한 대한민국 양궁은 한동안 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양궁이 왜 강한지 그 비결을 살펴보고 다른 종목으로 전파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선수풀, 수선발, 장비, 창의적 훈련방법, 지도자의 총체적 결정체 대한민국 양궁

 

슈팅로봇과 대결하는 임시현 - KBS 다큐

 

대한민국 양궁이 강한 이유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다. 

한 때 대한민국 양궁 지도자들의 지도 방법이 대한민국이 양궁이 강한 이유라는 견해가 많았다. 

 

초창기 양궁을 지도했던 지도자들이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양궁을 육성하기 위해서 혼신을 다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양궁 지도자들은 세계 각국의 코치진이 되어 전 세계적인 양궁 실력을 향상했다. 

 

이제는 과거처럼 쉽게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은 없을 지경이다. 과거처럼 거리별 기록경기로 메달을 획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토너먼트로 바뀌면서 거의 슛오프로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상향 평준화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남자 개인전에서 김우진은 결승에서 미국의 엘리슨에 슛오프까지 접전 끝에 승리하였다. 하지만 결국은 대한민국이 전종목을 석권한 결과는 지도자의 지도방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 한국 양궁이 강한 구체적 이유를 살펴보자. 

 

1. 한국 양궁의 두터운 선수층공정한 선발 과정

한국 양궁 선수들은 국제 경기보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이 더욱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국가대표팀은 임시현을 제외하고 이번 파리 올림픽 선발전에서 두 명이 교체되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했던 안산과 최미선이 탈락하고 남수현과 전훈영이 국가대표가 되었다. 신인인 남수현과 노장인 전훈영은 두터운 양궁 선수층으로 한 번도 국가대표가 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올해 상해에서 열린 양궁 월드컵 1차 대회와 예천에서 열린 2차 대회에서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중국에 밀려 은메달에 그치는 위기가 있었다. 

 

다른 종목 같으면 국제 경기에 강한 선수로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그것에 따라 선수가 교체될 수도 있었지만 양궁은 공정한 선발 과정의 원칙을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파리올림픽까지 전훈영과 남수현의 실력이 올라오면서 올림픽 10연패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선수 선발 과정의 공정성과 원칙을 어떤 경우에도 흔들지 않는 것이 한국 양궁이 강한 가장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있다. 

 

2. 창의적인 훈련 과정과 과학적 장비 개발

대한민국 양궁 선수단의 훈련 과정은 매우 창의적이다. 올림픽이 있을 때마다 대회 장소를 그대로 국내에 옮겨와서 실전과 다름없는 훈련을 펼친다. 

 

이번에도 파리 올림픽이 열리는 양궁 경기장의 모습 그대로를 국내에 세팅하고 선수들이 실전 적응 훈련을 했다. 또한 실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에 대비하는 창의적인 훈련 방법을 채택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대비해서는 중국 관중 모습과 중국어 등을 크게 틀어 선수들의 감정 동요를 최소화하는 훈련을 계속했다. 이런 창의적 훈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아 한번에 설명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또한 대한민국 양궁을 후원했던 현대차그룹은 지속적인 양궁 장비 개발에 많은 자금을 투자했고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상향 평준화된 양궁 수준에 맞게 세팅된 슈팅 머신을 개발하여 훈련 파트너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파리올림픽 전종목 석권 과정에서 동점을 이룬 후 슛오프에서 승리한 많은 경우 이런 훈련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선수층 못지않게 두터운 지도자 풀도 특정 계파나 특정 학맥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양궁 선수단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런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한국 양궁 당분간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놓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종목들도 한국 양궁의 패권 비결을 잘 학습해서 자신들의 종목에 적용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다른 종목에도 전파할 필요가 있는 강한 한국 양궁의 비결

한국 양궁이 강할 수밖에 없는 비결을 다른 종목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궁 협회를 지원한 현대차 그룹은 소리 없이 실질적 지원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에 축구 협회는 오랜 기간 회장단을 이어가고 있지만 축구 기량의 실질적 향상을 위해 제대로 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 

 

최근 월드컵 국가대표 감독 선발에 있어서도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해 많은 팬들의 질타를 받았고 오랜 기간 지배해 온 협회였지만 HD 그룹은 체계적인 협회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양궁협회의 운영 방식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또한 탁구 종목 같은 경우는 현대차 그룹의 기술력으로 슈팅 머신을 개발한 것에 착안해서 탁구 러버 등의 장비를 개발하는데 국내 기업의 기술력을 접목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신유빈이라는 스타를 만들었지만 중국 탁구를 격파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훈련 방법뿐만 아니라 탁구 장비 특히 러버에 있어 획기적 개발 필요성이 있다. 과거 중국의 이질 러버 이후 탁구에 있어 장비 개발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양궁처럼 선수층도 두텁고 여러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종목을 찾기 힘들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1988년 이전에는 한국 양궁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핑계만 대지 말고 협회를 중심으로 자신의 종목을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할 방법을 창의적으로 계발하는데 한국 양궁의 비결을 곱씹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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