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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들' 후기 - 거리두기에 실패 - 실화 바탕 '살인의 추억'과 비교

bonanza38 2023. 11. 2. 00:00

베테랑 정지영 감독의 영화 '소년들'을 개봉 첫날 보았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다수 감독했던 정지영 감독의 내공을 기대했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와 '거리두기'에 실패했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영화 속에 너무 직접적으로 녹아들어 갔다. 

 

관객은 영화 속에 반찬들을 자기 손으로 골라먹지 못하고 감독이 먹여 주는 대로 억지로 먹어야 하는 느낌을 받았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과 비교한다면 '거리두기'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를 풀어나갈 때 감독과 영화의 '거리두기'가 실패했을 때 관객들은 TV 다큐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을 받는다.

 

PD 또한 다큐를 재밌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향해 시청자를 이끌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프로그램에 개입한다. 따라서 다큐에서는 영화처럼 스릴이나 서스펜스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 '소년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극적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영화 '소년들'에서 문제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가 몇 개 있다. 하나는 결정적인 스포가 될 것 같아서 소개하기가 어렵겠지만 나머지 하나는 연기와 관련되어서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투리'이다. '사투리'는 영화 '소년들'에서 문제해결을 위해서도 중요한 열쇠지만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가 되는 요소였다. 하지만 영화 내내 연기자들은 매우 실감 나지 않는 사투리를 구사한다. 외국 관객들은 인식하기 어렵겠지만 국내 관객이라면 극적 몰입 장치가 극에서 유리되는 기재로서 역할을 했다고 느낄 것이다.  

 

영화 '소년들'은 감독의 연출, 구성, 배우 연기 모두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다. 베테랑 정지영 감독의 관록을 기대했고, 설경구, 유준상, 진경 등의 빼어난 연기력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모두들 난조를 보이고 있었다. 

■ 감독이 영화와의 '거리두기'에 실패한 영화 '소년들'

영화 '소년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영화 '소년들'은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살인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 '재심'의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처럼 경찰의 강압 수사에 의해 거짓 자백을 한 가짜 범인과 실제 사건을 저질렀던 진범이 존재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두 사건은 박준영 변호사라는 실제 인물이 모두 관여한 재심 사건이었다. 

 

그래서 영화 '소년들'은 의도적으로 영화 '재심'을 이끌어 가는 이준영 변호사(정우 분, 실제 인물 박준영 변호사)의 역할을 축소했고 생물학적 성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영화 '재심'에서 의도적으로 분량을 축소했던 황계장을 영화 '소년들'에서는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황준철(설경구 분)로 부활시켰다. 

 

감독은 영화 '소년들'은 영화 '재심'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 '소년들'에서 감독은 다른 영화와 '거리두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정작 자신의 영화와 '거리두기'에는 실패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감독이 영화와 '거리두기'에 실패하면 마치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TV 다큐 프로그램처럼 스릴과 서스팬스를 통한 긴장감을 가질 수 없다. 

 

TV 다큐 프로그램에서 PD가 '거리두기'를 통해 시청자에게 지나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것처럼 역으로 영화에서는 감독이  '거리두기'에 실패하면 감독의 의도대로 예측가능한 결말만 있을 뿐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의 예를 통해 감독과 영화의 '거리두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살펴보자. 

■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의 '거리두기'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봉준호 감독은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퀀스를 구성하고 구조를 치밀하게 조직했지만 관객들이 감독의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고 온전히 캐릭터의 대사와 움직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영화와 거리를 두었다. 

 

미치도록 범인을 잡고 싶은 두 형사의 심리의 극단까지 자유롭게 캐릭터가 확장되도록 감독은 충분히 거리를 두었다. 물론 감독이 만들거나 동의한 대사나 움직임이었지만 관객들은 캐릭터 내면의 흐름으로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대사와 동작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송강호의 명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와 마지막 신의 클로즈업은 감독의 의도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했다. 

영화 '상인의 추억' - 밥은 먹고 다니냐? - 송강호 - JTBC 방구석 1열

 

영화 '살인의 추억' 엔딩 - OCN O씨네

영화 '소년들'은 영화라는 반찬을 관객들이 자유롭게 골라먹을 수 있는 공간을 주지 않았다. 감독이 원하는 의도대로 관객들의 입을 열고 반찬을 억지로 쑤셔 넣는 느낌이었다. 

 

혹자는 영화 '살인의 추억'은 미제 사건을 다루는 열린 결말이기 때문에 '거리두기'가 가능했고 영화 '소년들'은 분명한 결론이 있는 닫힌 결말이기 때문에 '거리두기'가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거리두기'라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분명한 결말이 있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예를 들어보자. 

 

영화 '스포트라이트' 후기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아동 성범죄를 다루는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분명한 결말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감독은 사건의 교훈이나 결말에 초점을 맞추는 연출을 통해 직접 영화에 개입하지 않고 캐릭터의 심리가 관객과 동화될 수 있도록 충분히 '거리두기'를 했다. 

 

반면 영화 '소년들'에서는 관객들이 캐릭터에 동화될 수 있는 공간을 감독이 막아버린 느낌이었다. 특히 영화 종반부에서 더욱 심화되는 감독의 주입식 교육에 관객들은 영화의 여운도 느끼지 못하고 영화관을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진한 아쉬움 - 쿠기영상 유무 - 평점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 베테랑 정지영 감독의 영화라서 더욱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연기파 배우들인 설경구, 유준상, 진경 등이 출연한 영화라서 더욱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영화에 있어 극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소재에 대한 아쉬움이다. 바로 '사투리'이다. '사투리'는 극 종반부에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전라북도 삼례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특유의 전북 사투리를 통해 관객들은 극에 완벽하게 몰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연기자들이 전북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외국 관객들이라면 알 수 없겠지만 전남 사투리와 전북 사투리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 정도의 디테일가지 요구하지는 않지만 사투리의 일관성이 없었다. 

 

특히 극의 중심인물 중에 한 사람인 윤미숙 역을 맡은 연기파 배우 진경은 서울말과 전북 사투리를 일관성 없게 번갈아 사용하면서 관객들을 몰입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다른 연기자들도 사투리 때문에 스스로가 자유롭게 연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아쉽게도 그것을 고스란히 관객들은 눈치채고 말았다. 

 

쿠키영상은 없다. 평점은 너무 아쉽게도 좋지 않다. 

영화 '소년들'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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