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디악, 세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네트워크, 나를 찾아줘
최근 그의 작품을 열거만 해도 시네필을 설레게 만드는 감독 데이빗 핀처.
그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영화 '더 킬러'를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영화가 재밌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분명한 것은 그 어떤 킬러 무비와는 다른 데이빗 핀처만의 독특함이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이젠 식상한 '살인 청부업자'라는 싸구려 재료를 이용해서 가성비 높은 '빕 그루망'을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하다.
물론 제작비는 1억 7500만 달러가 들어가서 합리적 가격으로 맛있는 훌륭한 음식을 만드는 '빕 그루망'의 취지에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젠 상투적 소재가 된 '킬러'를 이용해서 독창성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빕 그루망'같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상상했던 킬러의 빈틈없는 액션과 결투신은 이 영화의 본질이 아니었다. 킬러의 심리와 생존을 위한 디테일한 행동을 통해 자본주의에 내몰려진 수많은 직업군들 속에서 자신을 수단화하고 타인을 수단화하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 '더 킬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자신만의 루틴을 주문처럼 암송하는 킬러(마이클 패스벤더 분)가 주변을 관찰하는 시퀀스로 시작하는 첫 장면이 다소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잡(job)은 생존(for a living)을 위해 하는 것이다.
즐거움(for pleasure)을 위해 하는 취미(hobby)와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직업은 지루하다.
그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프로는 철저해야 한다. 돈을 버는 직업인이라는 느끼는 디테일한 고민과 간간히 등장하는 킬러의 시점 숏을 통해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더 킬러'라는 제목 때문에 액션과 격투신에 기대를 걸었다면 실망하겠지만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심리를 추적해 간다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 '더 킬러'를 소개한다.
■ '살인 청부업자'라는 싸구려 소재로 '빕 그루망'을 만든 영화
넷플릭스가 투자한 영화의 제작비가 적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려 1억 7500만 달러가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소재는 매우 싸구려다. '살인 청부업자'라는 소재는 이젠 소리만 들어도 식상하다.
하지만 데이빗 핀처는 달랐다. 단순히 액션과 스릴러에만 몰두하지 않고 매우 디테일한 킬러의 심리를 추적했다. 그래서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에 주어지는 미슐랭 가이드의 칭호인 '빕 그루망'을 붙이고 싶다.
첫 시퀀스는 매우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for a living) 선택하는 직업(job)은 원래 지루한 것이다. 특히 인간을 수단화하는 전문적인 직업(career)은 더욱 지루하다.
직업을 가진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 매일 루틴처럼 엄격한 규칙을 되뇌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그 엄격한 규칙을 루틴처럼 외우는 완벽한 킬러가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영화 '더 킬러'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실수의 대가를 치르는 여정과 그 대가의 대가를 치르는 여정의 시퀀스로 영화는 구성되어 있다.
파리에서의 실수, 대가를 치르는 도미니카 공화국, 대가의 대가를 치르는 여정인 뉴올리언스, 플로리다, 뉴욕, 그리고 시카고. 다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오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 부조리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를 연상하게 만드는 킬러
첫 시퀀스에서 킬러는 창을 통해 세상을 관찰한다. 창을 내다보는 킬러의 시점 숏을 통해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세상과 부합하지 않는 세상을 관찰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명확하다. 목적에 부합하는 세상은 죽음으로 귀결될 것이고, 부합하지 않은 세상은 평화가 유지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에서 내려다보면서 아무런 목적 없이 세상을 관찰하는 부조리 소설 '이방인'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뫼르소와는 다르지만 묘하게 세상을 관찰하는 시선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누군가를 죽여놓고 왜 죽였는지를 묻자 "태양이 눈 부셔서"라는 황당한 답변을 하는 뫼르소처럼 킬러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게 사람을 죽이려 한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돈을 위해서"라는 답변을 할 것이다. 하지만 돈을 위한다면 사람을 죽여도 되는가? 뫼르소의 답변처럼 이 또한 황당한 답변이다.
"계획대로 해", "예측은 하되 임기응변은 금물". "공감은 금물", "아무도 믿지 마"
킬러는 계속 주문을 외운다. 철저하게 생존을 위해 루틴을 지키고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킬러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른 부조리한 현실이 이어진다.
킬러의 계획은 무산되고 그 뒤의 여정은 매우 부조리하다. 킬러의 은신처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실패의 대가를 확인하다. 킬러의 주문은 모두 엉클어진다. 실패의 대가에 대해 공감하고 계획되지 않은 임기응변의 행동이 연속된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주문도 누군가를 믿고 그녀를 위해 대가의 대가를 치르는 임기응변의 계획을 세우면서 엉클어진다.
부조리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부조리하니까...
단지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그 부조리한 현실의 결과는 파멸일 수밖에 없는데 킬러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밋밋했다. 부조리한 현실에 휩쓸려 가는 사람의 최후가 뫼르소와 같았다면 영화의 여운은 더욱 남지 않았을까?
■ 마블 영화도 아닌데 무슨 쿠키 영상? - '더 킬러' 평점
'더 킬러'는 계속되는 스핀오프를 암시하기 위해 쿠키 영상을 내 보내는 마블 영화는 아니다. 따라서 당연히 쿠키영상이 없다.
이 영화의 제목 '더 킬러'에 너무 초점을 맞춘다면 실망할 거리도 없지 않다.
첫 시퀀스는 너무 지루할 수 있다. 특히 격투신은 너무나 길고 볼거리가 없다.
하지만 킬러의 심리와 나의 심리를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첫 시퀀스조차 몰입할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과 타인을 수단화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기왕 액션보다는 킬러의 심리에 초첨을 맞춘 영화를 기획했다면 지루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격투신과 같은 장면을 좀 더 과감하게 편집하는 것은 어땠을까? 틸다 스윈튼의 독백 연기가 압권인 디테일한 심리 묘사와 같은 시퀀스를 더 추가했다면 수미상관인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
일주일 정도 개봉관에서 상영되었지만 지금은 OTT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 후기가 영화 감삼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최근 불어닥친 영화의 위기는 독창적이고 질 좋은 영화를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다.
간만에 비교적 좋은 감상평을 남기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앞으로도 긍정적인 감상평만 남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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