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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솔직 후기 - 극적 긴장을 반감하는 지나친 드라마타이즈

bonanza38 2023. 11. 23. 23:08

영화를 평하면서 영화 외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을 지양한다. 

감독이나 배우의 세평이나 전작의 성과, 언론을 통한 마케팅, 심지어 정치적 지향까지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로 영화를 평해왔다. 

 

하지만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한 번쯤 일탈을 시도해 보겠다. 

대한민국의 헌정사를 중지시켰던 12.12 군사 쿠데타처럼 영화 '서울의 봄' 후기는 보낸자 영화 평론의 쿠데타가 될 것이다.  

극적 긴장을 방해하는 지나친 드라마타이즈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영화 '서울의 봄' 메인 예고편 - 플러스앰 엔터테인먼트 캡처

'서울의 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지만 지루하지 않고 상당한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출연한 영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산만한 구성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스트럭처의 짜임새가 있었다. 

 

하지만 실화 소재 영화를 지나치게 드라마타이즈(극화된 표현) 한 것이 오히려 극적 긴장을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특히 진압군과 반란군이 충돌하는 광화문 대치 장면을 포함한 몇몇 시퀀스의 지나친 드라마타이즈는 역사적 사실과 너무 동떨어져 오히려 개연성에 의구심을 들게 만들었다. 그 결과 영화와 관객이 유리되는 효과를 낳고 말았다. 

 

물론 드라마타이즈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급박한 순간에 수방사령관 이태신 장군(정우성 분)과 아내와의 대화는 분명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극화된 각색이었겠지만 공적인물과 사적인물로서의 내적 갈등이 관객에게 투영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행주대교 앞에서 홀로 2 공수를 막아내는 이태신 장군, 반란군과 진압군이 광화문에서 대치하면서 확성기를 통해 대화하는 시퀀스 등은 오히려 건조하게 역사적 사실만으로 연출했을 때보다 관객들을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되고 말았다.

 

다른 작품평을 통해 몇 번 강조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감독의 지나친 욕심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감독의 거리두기'가 영화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영화 '스포트라이트'영화 '소년들'과 영화 '살인의 추억'의 비교를 통해 언급한 바 있어 생략하겠다.   

 

물론 김성수 감독의 느끼는 제약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어쩌면 이런 시퀀스를 통해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느끼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도는 하지 않았던 것보다 못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 영화 '서울의 봄'의 근원적 한계

영화 '서울의 봄' 황정님 (전두광 역) - 플러스앰 엔터테인먼트 티저 광고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감독이나 배우의 역량과 전혀 관계없는 근원적 아쉬움을 느낀다. 

할리우드와 너무도 다른 실화를 다룬 영화에 접근하는 한국의 실정이 티저 광고를 보면서부터 못내 아쉬웠다. 

 

영화 '밤쉘'처럼 역사적 평가나 심지어 법률적 심판까지 끝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인물의 실명을 그대로 드러내어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할리우드 영화의 접근 방식과 너무나 판이한 한국 영화판의 실정에 진한 아쉬움과 답답할 만큼의 한계를 느낀다.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 반란범인 전두환, 노태우는 이미 김영삼 정권 때 법의 단죄를 받았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심(전두환 사형, 추징금 2,259억 원, 노태우 무기징역, 추징금 2,838억 원)에서부터 2심과 대법원(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까지 유죄가 인정된 군사반란범이다. 

 

그런데 전두환을 전두광으로 노태우를 노태건으로 개명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영화판의 현실이 개탄스럽다. 아카데미와 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문화 강국 대한민국에서 유죄가 인정된 공적 인물에 가명을 사용해서 영화화할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이 오히려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이런 측면에서 영화 '서울의 봄'은 감독과 배우의 역량과 상관없는 근원적 한계가 노정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온몸을 옭아매고 있는 제약 속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벌인 처절한 혈투의 결과물이 영화 '서울의 봄'일지도 모른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경의와 동시에 아쉬움을 표하고 싶은 양가적 감정은 어쩌면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느끼는 양가적 감정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민주주의를 쟁취해 냈지만 그 민주주의를 이용해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양가적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서울의 봄' 아니 '대한민국의 봄'은 언제쯤 온전하게 여문 개나리를 피울 수 있을까?

■ 영화 '서울의 봄'  평점 

영화 '서울의 봄' 후기를 통해 평했던 아쉬움에 비하면 어쩌면 평점이 후하게 느껴질 것이다. 영화 자체 때문이 아니라 한국 영화판, 더 나아가 한국의 현실에서 기인한 한계 때문에 느끼는 아쉬움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전두광을 전두환으로, 노태건을 노태우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기를 희망한다. 

 

예술과 언론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더 창성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영화 '서울의 봄'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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