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영화 '괴물'은 괴물 같은 영화다.
일본 영화 특유의 소설 같은 느린 흐름으로 고구마 몇 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으로 몸을 비틀다가 영화관을 뛰쳐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고구마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나더니 심지어 꽃봉오리를 맺는 영화를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엔딩을 향하며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선율과 함께 만개한 괴물 같은 꽃의 향기를 느낀 영화
영화의 결말을 위해 도입 부분의 지리함을 참아 내야 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필자에게 마지막 결말의 전율로 단단한 눈처럼 쌓였던 지리함이 녹아내리는 영화
영화적 완성도는 차치하더라도 소재가 함부로 낭비되지 않는 치밀한 각본의 힘
시선이 교체되면서 단절되는 듯한 영화가 복선이 내장된 소재들의 빈틈없는 연결로 단단한 콘크리크가 되는 영화
영화 초반부 3점에서 시작한 평점이 마지막에 이토록 변화한 영화는 없었다.
그 어떤 영화도 마지막의 절정으로 초반부의 미흡을 만회할 수 없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괴물'은 예외였다.
■ 영화 초반부 고구마 같던 영화가 점점 뿌리를 내리면서 괴물이 되는 영화
영화 '괴물'은 불타는 건물을 향해 사이렌을 울리면서 소방차가 달려가면서 시작한다.
불길은 괴물을 연상하듯이 무섭게 타오른다.
그리고 지리한 도입부가 시작된다.
일본 영화를 보면서 늘 느끼는 지리함, 생경함, 간혹 느끼는 집요함을 참아내야만 했다.
고구마를 먹은 듯했다.
마치 잃어버린 30년 전에서 멈춘 듯한 일본의 모습처럼 일본 영화의 전형이 영화 '괴물'의 도입부에서는 이어진다.
폭력을 손이 코에 접촉했다고 말하는 교장의 말에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영화관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쉬운 말을 어렵게 하고 속내를 나타내지 않은 일본식 '혼내'로 치부하고 싶었던 그 대사들
그런데...
그 모든 소재들이 치밀한 복선이 되어 답답했던 고구마는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줄기가 나오더니 꽃봉오리를 맺는다.
■ 조금도 낭비되지 않는 소재들의 치밀한 연결성 - 고구마 꽃봉오리에서 터진 괴물꽃
불, 라이터, 신발, 보온병 안의 흙, 돼지 뇌, 왕따, 싱글맘, 싱글대디, 열차, 산사태,
그리고 갑작스러운 시선 교체.
모든 것이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는 소재 속에서 혼란스러운 관객들에게 시선 교체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더뎠다.
다른 시선에서 폭력과 접촉이 합일된다. 아주 더디게 신발의 의미, 보온병 안의 흙의 의미, 미나토의 귀의 상처의 의미가 해결된다. 자동차에서 뛰어내리는 미나토, 산속의 열차, 폭풍 이 모든 소재들이 치밀하게, 단단하게 하나가 된다.
고구마 줄기에서 나온 꽃봉오리는 너무나 더디지만 단단히 여문다.
그러다 갑자기 무겁게 웅크리고 있었던 꽃봉오리가 터트려진다.
체기에 명치를 눌렀던 고통이 일 순간 사라지듯이, 단단하게 뭉친 눈덩이가 일순간에 녹듯이 답답한 모든 기억은 사라진다. 도입부의 지루함을 영화의 완성을 위한 빌드업으로 치환하게 만드는 신기한 경험.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 감독의 피아노 선율과 함께 고구마는 마음속에서 시원하게 터져 나온 괴물 같은 꽃봉오리를 펼치면서 엔딩 크레디트가 오른다.
■ '괴물은 무엇이 만드는가?' - 영화 '괴물' 평점
괴물을 보면 모든 인물들이 괴물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미나토가, 그다음에는 호리 선생님이...
그리고 이번에는 교장선생님이,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가
미나토의 친구 왕따 대상인 요리가, 요리의 아빠가...
이 모든 사람이 괴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시선이 교체되면서 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고 관객을 충분히 설득한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었다. 실존적 인간으로서 그 어떤 사람도 괴물은 아니었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그들은 괴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만약 요리를 괴롭혔던 괴물 같았던 친구들의 시선을 통해 영화가 전개되었다면 그들에게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괴물로 만든 또 다른 괴물이 있었을 것이고, 또 다른 괴물을 괴물로 만든 또 다른 괴물이 존재했을 것이다.
종국에는 괴물의 집합체인 괴물 같은 사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괴물'의 포스터에 두 아이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는 이유가 밝혀진다.
아이들을 괴물로 혹은 괴물의 희생자로 만들었던 중요한 모티브가 공개된다.
스포일러를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에 이쯤에서 멈추겠다.
영화를 보고 경품으로 받은 3D 티켓에서도 그 모티브를 상징하듯이 두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있다.
잃어버린 30년처럼 멈춰버린 듯한 일본 영화의 전형이 싫다. 그래서 이 영화 도입부에 그런 답답함을 느꼈다. 소설인지 영화인지 구별되지 않는 작가주의적 영화 전개가 답답했다.
그래서 영화 평점은 선입견을 확인하면서 3점을 유지했다. 상당 시간 내 마음속의 평점은 변화하지 않았다.
칸의 각본상은 아무나 받을 수 있겠다는 비아냥을 연신 읊조렸다.
그러다 신기한 경험을 한다. 영화 후반부 갑자기 평점이 조금씩 상승하더니 엔딩 크레디트가 마무리되어서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칸의 각본상의 자격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내 옆자리 여성은 분명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쩌면 내 인생에 마지막일 수 있는, 이제는 고인이 된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선율을 음미하면서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도록 자리를 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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