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대한민국 언론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재난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갑작스럽게 앵커와 진행자가 교체되고, 특정 방송은 편성되지 않았다.
박민 KBS 사장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제시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언론장학백서에 따르면 MB 정권의 인적장악 5단계 중에서 2단계부터 5단계가 2023년 11월 13일 하루에 모두 시행되었다.
KBS 박민 사장은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고 말한다.
간부로 임명되기 전에 라디오 PD를 통해 진행자를 교체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정체성인가?
사장 재가가 떨어지자마자 점령군처럼 갑작스럽게 간판 뉴스 앵커와 시사 방송 진행자를 교체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정체성이라는 말인가? BBC가 그랬는가? 신뢰를 잃어가는 NHK가 그랬는가?
이런 상황에서 KBS 구성원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다. 노조에서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웅얼거리는 성명만 발표할 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 신음하는 국민들도 이젠 KBS를 도와줄 여력이 없다.
이런 것을 바랐을 것이다.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저항하지 않는 극한의 무기력함을 의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보여 주었듯이 국민들은 붉은 인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손가락 힘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준엄한 사실을 언젠가 입증할 것이다.
■ 점령군처럼 속전속결. 앵커, 진행자 교체 작전 - 시사 방송 프로그램 수류탄 투척 초토화
마치 점령군 같다. 박민 사장이 임명되기 전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인사가 나기도 전에 한 간부가 라디오 PD를 통해 진행자를 교체했다고 전국언론노조 KBS 라디오 조합원은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기력한 패잔병으로 가득한 KBS를 속전속결로 접수하는 박민 사장. 당당한 위용으로 주말에 앵커를 교체하고 시사 방송 프로그램은 수류탄 투척 수준으로 초토화했다.
용맹하고 거침없는 박민 사장의 공영방송 정체성 회복 작전은 매우 성공적으로 첫걸음 내디뎠다. 같이 싸울 전우가 없다며 미리 진지에서 탈출한 노병들이 물러간 자리에 KBS 기간병들은 새로운 점령군들에게 순순히 자리를 내주었다.
간혹 언론노조 레지스탕스들이 웅얼거리는 불평을 늘어놓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비슷한 행동을 했던 10년 전 정권에 대해서 파업으로 맞섰던 노병들이 물러가고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난로가 좋은 기간병들은 밖으로 나가길 싫어한다.
이점을 점령군들은 노렸다. 총 한발 쏘지 않고도 공영방송 KBS 접수 작전은 성공적으로 첫 작업을 마무리했고, 그들이 원하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찾아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KBS를 변모시킬 것이다.
■ 정의 앞에 중립은 없다 - 기계적 양적 중립에만 매몰되는 어리석은 언론의 현실
박민 사장은 KBS가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을 개인이나 집단의 이념, 소신을 실현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분은 앞으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을 KBS 기자가 취재한다면 아마도 이런 보도가 나올 것이다. 진실이 어떻든 소신을 배제하고 기계적, 양적 중립에만 매몰된 기사를 내보내야 할 것이다. 아니면 KBS에서는 설 자리가 없을 테니까...
앵커 : 지금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무소신 기자! 오늘 재판 상황에 대해서 알려주시죠.
무소신 기자 : 네. 여기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재판정 앞입니다. 네 지금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등장했는데요. 인터뷰를 해 보겠습니다. 갈릴레이 씨 분명히 움직이는 태양을 보고도 지동설을 주장하셨는데 동체 시력이 안 좋은가요? 99%의 국민들이 천동설을 믿고 있는데 사회를 혼란에 빠트린 것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시나요?
갈릴레오 갈릴레이 : 할 말이 없습니다.
무소신 기자 : 네 갈릴레이 씨는 답변이 궁색했는지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앵커 : 무소신 기자.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위해서 갈릴레오 씨가 왜 지동설을 주장했는지 그 이유도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무소신 기자 : 네. 갈릴레오 씨는 그의 저서 '시데리우스 눈치우스'를 통해 목성의 위성을 관찰하면서 지구도 목성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 그럼 이번에는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보죠.
무소신 기자 : 네. 지나가는 시민을 인터뷰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천동설과 지동설 중에서 어떤 이론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시민 : 당연히 천동설이죠. 저 태양을 보세요. 아침에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사라지잖아요. 당연히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돌고 있는 거죠. 그리고 여론 조사를 보면 국민 99.9%가 천동설을 믿고 있잖아요. 0.1%의 정신 나간 사람 때문에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러워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무소신 기자 : 아 시민님.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요. 방금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본 방송사의 견해와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 방송사는 모든 사항에 대해서 중립을 지키고 있습니다.
앵커 :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방금 시민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 흥분한 시민께서 갈릴레오 씨에게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은 방송사의 견해와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본 방송사는 공영방송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중립을 지키는 것이 방송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시민께서 언급하신 여론 조사 내용은 천동설과 지동설에 대한 국민 여론 조사 결과입니다. 천동설에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은 99.9%이고 지동설에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은 0.1% 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여론 조사 결과는 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 3%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안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 오늘 보도를 마칩니다. 늘 공정하고 중립적인 공영방송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KBS 로고송도 교체해야 - 무기력한 KBS 구성원에 국민은 도울 여력이 없다.
가수 장혜진이 부른 KBS 로고송에서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이라는 정겨운 가사가 무색하다.
과연 KBS는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국민의 방송인가? 아니면 한 정파나 이념을 대표하는 정권의 방송인가?
상식적이고 민주적인 절차 없이 점령군처럼 밀어붙이는 이런 행태를 보고 누군가가 '충성을 다하는 정권의 방송'이라고 비아냥거려도 크게 할 말은 없을 것 같다. 과연 국민을 위해 이런 무리한 작태를 벌이는 것인가?
그런데 이명박 정권 때 파업까지 단행했던 KBS가 잠잠하다. 점령군처럼 하루아침에 앵커를 자르고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는데도 언론노조는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웅얼거리는 목소리만 낼뿐 실질적인 행동은 없어 보인다.
최강시사를 진행했던 최경영 기자는 방송에서 물러나며 같이 싸울 사람이 없어 회사를 그만둔다라고 밝힌 바 있다.
KBS 구성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 않으면 누가 싸울 것인가?
고물가, 고금리, 고유가로 극단의 경제 상황에서 생존의 위기에 몰려있는 국민들은 더 이상 싸울 여력도 없어 보인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어도, 미래를 책임질 R&D 예산이 축소되어도, 해병대 순직 상병을 조사하던 충직한 군인을 항명으로 몰아도, 이태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왜 죽었는지 몰라도, 오송에서는 왜 그렇게 참변이 일어났는지 몰라도...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무서운 한파에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한 상황에서도 인동초처럼 꽃을 피웠다.
부정선거로 영구 집권을 할 것 같았던 이승만 정권을 4.19 의거로 무너뜨렸던 국민들이다.
서슬 퍼런 군부 정권에서도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을 통해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린 국민들이다.
권력을 사적 이익 추구의 도구로 삼았던 정권과 헌법을 유린하며 역사를 퇴행시켰던 정권을 촛불혁명을 통해 처단했던 국민들이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처럼 빨간 인주를 종이에 찍을 손가락 힘만 있어도 우리 국민들은 언론 자유를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이다. 역사는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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