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드라마 '더 에이트 쇼'는 천민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결코 재미가 전혀 없거나 끝까지 볼 필요를 느끼지 않게 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다음 장면을 기대할 만큼 긴장감이 넘치거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에 탄복할 드라마는 아닌 것도 분명하다.
천민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돈을 위해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망각하는 비슷한 소재의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캐릭터의 전사와 후사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었다면 '더 에이트 쇼"는 전사를 최소화하는 차별성을 부각했다.
하지만 균형감을 상실한 후사의 후사의 후사는 지루할 정도다. 특히 그 후사의 내용은 관객들을 불쾌하게 한다. 자극적이면서도 표피적으로 구성된 작품의 한계성을 관객들의 탓으로 돌리는 변명을 한다.
웬만하면 스포일을 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 불쾌해서 대사를 그대로 옮길 수밖에 없다. 처절한 현실을 다루려는 감독에게 제작자가 일갈한다.
"사람들은 달콤한 케이크 먹듯이 기분 좋으려고 돈 쓰려는 건데 뭐 하려 현실을 말하려고 해요? 사람들 다 인생에 지쳐있는데..."
최근 작품성은 없다고 인정되는 시리즈물이 연속 1000만을 달성하고 있는 양태를 꼬집으면서 비루하고 처절한 현실을 다루는 작품보다는 통쾌하게 한 방에 악인을 무찌르는 단순성이 흥행에 성공한다는 제작자의 솔직한 변명이었다.
이 작품이 왜 이렇게 자극적이면서도 표피적으로 그치며 결국 천민자본주의적 고통을 판타지로 해소하는 단순한 선택을 하는지를 오로지 관객의 탓으로만 돌리는 불쾌한 변명이었다.
리얼리티 쇼 형식의 작품 중 성공작이었던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면 이 소재를 선택하지 말던지 이 소재를 선택했다면 '오징어 게임'을 능가하는 엄청난 각본과 구성력 그리고 연출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도저도 아닌 수준 낮은 작품이 된 이유를 시청자와 관객에게 돌리는 직접적 대사를 작품에 삽입한 부분으로 이 작품의 한계성을 그대로 노정하고 말았다.
캐릭터의 전사를 최소화하는 과감한 선택이 현사의 치밀한 구성으로 이어져야 했지만 각본은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래서 전술한 변명에 더불어 지루한 후사를 통해 변명에 변명을 이어갔다.
거장은 작품을 통해 변명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그래서 거장의 작품은 아니다.
지금 연속 천만을 기록하는 시리즈물 한국영화를 통해 역설적으로 '한국 영화의 위기'를 감지하듯이 최근 OTT를 통해 소비되는 한국 드라마도 위기에 봉착한 듯하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지닌 신인 작가와 감독을 과감하게 기용하기보다는 검증된 작가와 감독을 통해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영화와 OTT 제작자들로 인해 한국 스토리텔링 사업은 위기에 봉착했다.
대사를 통해 솔직하게 설파한 무지한 관객이 문제가 아니라 대중의 수준을 폄하하는 제작자의 수준이 문제라는 사실이 더 두드러질 정도로 '더 에이트 쇼'는 공감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 캐릭터의 전사를 최소화하려는 참신한 선택 - 치밀하지 못한 현사로 한계 봉착
천민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
리얼리티 쇼를 소재로 한 걸작 '오징어 게임'은 캐릭터의 전사와 현사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는 풍성해졌다. 그리고 후사를 통해 속편을 기대할 정도로 전사, 현사, 후사가 적절하게 안배를 이루었다.
'더 에이트 쇼'는 '리얼리티 쇼'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듯 전사를 과감히 생략했다. 부분적으로 전사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 비중은 매우 미미했고 현사와 치밀한 연속성은 전무했다.
참신한 선택이었다. '리얼리티 쇼'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인간성 상실을 강요하는 쇼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의 전사를 통해 상당 부분 이야기를 전개했다.
하지만 '더 에이트 쇼'는 궁금증만 남겨두고 전사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통해 현사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치밀한 각본과 디테일한 연출력으로 시청자를 탄복하게 현사는 많지 않았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안정성이 고민하지 않고 시간 때우기에 적절한 작품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작품성의 한계를 시청자와 관객의 탓으로 돌리는 비겁한 변명까지 대사를 통해 표명하는 선을 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 자극적이지만 표피적인 작품성의 한계를 시청자 탓으로 돌리는 제작진
이 작품의 캐릭터는 자극적이지만 표피적이다.
특히 천우희 (8층 역)는 밑도 끝도 없는 판타지적 캐릭터로 일관했다.
그녀가 왜 그런 캐릭터가 되었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그랬다.
전사를 생략한 것은 다른 '리얼리티 쇼' 소재 드라마와 차별성을 부각하려는 참신한 시도로 알았지만 이쯤 되면 전사와 현사를 연결할 능력 부족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캐릭터는 평면적이었고 이야기는 파편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불안정은 작품을 가볍게 만들었고 고민하지 않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시청자는 작품을 통해 단순히 가볍게 시간만 때우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제작자는 가볍게 무시한다. 작품에서는 감독의 주장을 무시하는 현실적인 제작자의 논거였지만 실상은 감독의 변명이었다.
"시청자와 관객들은 돈 주면서 비루한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아해."라는 대사를 통해 작품의 표피성을 변명한다. 평면적인 캐릭터와 스토리 전개를 아이디어 부족이 아니라 소비자의 기호의 탓으로 돌리는 비겁함이다.
이런 식으로 창작자들이 변명을 시작하면 창의력은 말살된다. 창의적인 시도의 필요성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솔직한 현실을 그대로 노정하고 말았다.
■ 한국 콘텐츠 산업의 위기와 '더 에이트 쇼" 평점
최근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분명 위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고갈된 듯하고 천박한 작품 수준을 관객 수준의 탓으로 돌리는 선을 넘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더 에이트 쇼'에서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천민자본주의 하에서 고통받는 비루한 민중의 구조적 고통의 원인을 짚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층별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상징하면서 천민자본주의의 실체를 고발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실존적 가치를 상실하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작품을 보면서 그런 주제의식을 치밀하고 디테일한 구성력과 연출력을 통해 표출하려는데 한계에 직면하자 포기하고 마는 듯한 생뚱맞은 전개가 이어진다.
심지어 영화 '조커'의 처절한 전사는 무시한 표피적인 패러디는 인위적으로 개연성을 조작하려고 한다. 말 그대로 형용모순인 '인위적인 개연성'. 이 외에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구성력과 연출력의 부재가 드러난다.
그런데 그것이 왜 시청자와 관객의 탓인가?
비단 이 작품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는 시청자와 관객을 탓하며 안정적인 선택에만 골몰한다.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한 두 작품이 실패하자 참신한 신인의 선택을 주저한다. 결국 이미 검증받은 작가와 감독에게 기회는 독점되고 결국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었다. 신인이라도 유명 감독의 조감독 출신에게만 선별적으로 기회가 주어진다.
방법은 하나다.
도제식이 아닌 전 세계 널려있는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신진 작가와 감독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제작자도 용기를 가져야 한다. 위험이 없이 어떻게 성공이 있을 수 있는가?
안전한 선택보다는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선택을 통해 콘텐츠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
'더 에이트 쇼'는 작품성의 한계 때문에 도리어 한국 콘텐츠 산업의 위기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이러니를 내포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평점은 좋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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