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김대남 행정관과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의 녹취록이 인터넷 언론 매체인 서울의 소리와 저널리스트를 통해 공개되었다.
대통령실에서 수석행정관과 비서관 직무대리를 했던 고위 공직자의 민낯을 볼 수 있는 녹취록이었다. 지금은 공기업 감사로 있는 김대남 씨는 이명수 기자와의 대화가 고도의 심리전으로 모든 내용이 의도적인 허위 내용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대통령실의 고위 공직자가 정치공작을 시도한 것으로 부적절하고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녹취록 그 자체가 한국보수의 저급한 수준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충격적인 증거가 되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공동체 전체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경향성이 많다. 그에 따라서 전 세계적 보수는 민족주의적 경향성이 지배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진정한 보수는 민주당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보수는 학문적 관점의 보수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족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친일과 친미를 기조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기형적인 한국보수는 대통령실이라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기득권과 이익이 극대화해야 하는 공간 속에서도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도착적 리버럴(liberal)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한국보수를 떠받치고 있는 시민들은 한국전쟁의 아픔 속에서 분단 논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대립 속에 삶과 죽음의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던 시민들은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으로 파고든 모든 세력과 연대했다.
그 세력 속에 친일과 반민주 세력이 녹아들어도 생존을 위해 시민들은 기형적인 한국보수를 선택해 왔다. 이에 따라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대한민국에서 보수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성립될 때까지 한국보수는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수의 반동으로 형성된 한국진보는 기이하게 민족주의적 성향과 공동체와 사회를 중시하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고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분단논리에 사로잡혀있던 대한민국 다수의 시민들은 1세대 반공 이데올로기의 세대와 그들의 자손과 2세대 독재세력에 기반한 천민자본주의 세력의 결합으로 더욱 공고화되었다. 이에 독재정권의 연장을 위한 지역감정 또한 한국보수를 더욱 강퍅하게 만들었다.
35%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국진보는 결코 집권할 수 없는 구조가 되었다. 이를 무너뜨리려는 김대중과 김영삼의 시도는 언제나 실패했고 요원해 보였다.
이에 먼저 굴복하고 기이한 한국보수에 편입된 세력이 김영삼이었다. 과거 야도였던 부산 경남이 한국보수에 편입되는 계기가 된 3당 합당이 반역사적인 폭거였던 이유는 부산 경남마저 한국보수에 완전히 편입되고 호남이 소외되는 지역주의적 경향성이 한동안 더욱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보수의 두 번째 균열을 가져왔던 87년 민주항쟁으로 뿌려진 민주주의의 씨앗을 3당 합당은 완전히 짓밟은 역사적 퇴행이었다. 무너질 것 같았던 노태우정권에 이어 김영삼 정권까지 한국보수는 재창출되고 말았다.
하지만 한국보수의 기반이 흔들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민주주의의 씨앗은 3당 합당이라는 퇴행적 밭갈이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을 중심으로 살아남았고, 그런 상황에서 IMF가 일어난 것이다.
한국 보수의 첫 번째 균열을 가능하게 했던 4.19 혁명 이후 친일과 독재에 천민자본주의가 결합된 한국보수가 87 민주 항쟁으로 충격을 받고 그들이 만들어낸 한국식 천민자본주의가 얼마나 허장성세였는지 IMF 사태를 통해 증명했다. 한국보수의 세 번째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한국보수의 균열 속에 한국중도는 한국진보를 선택하게 되었다. 사상 최초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했던 김대중 정권이 탄생했다.
공산주의 전력이 있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오히려 '빨갱이'로 몰렸던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서 한국중도는 한국진보의 가능성과 실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는 이후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의 탄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김대중 정권은 '햇볕정책'이라는 창의적인 통일정책으로 군사적 요충지인 개성과 금강산에 공단과 관광지를 조성해서 북한 군대를 후방으로 밀어내고 실질적 평화를 가져왔다. 아직은 이 엄청난 사건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역사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획기적 역사적 시도로 기록할 것이다.
또한 IMF를 조기에 극복한 김대중 정부의 실력은 한국보수의 균열을 가속화했고 한국중도의 비중을 높였다. 이를 통해 기반이 일천한 한국진보가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는 기적을 만들어내었고 그 결과 노무현 정권이 탄생했다.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를 때 득표율이 40.27% vs. 38.74%로 그 차이가 1.98% P이었던 것에 비해 정치적 경륜이 일천했던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를 때 48.91% vs. 46.58%로 그 차이가 2.33% P로 벌어진 것은 김대중 정권에 대한 국민적 만족도가 상당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IMF 극복,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으로 평화적 통일 기반 조성, IT 인프라 조성으로 대한민국 선진국 경제 진출 기반 조성,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등 김대중 정권의 업적은 상당했다.
심지어 김대중 정권의 실정으로 꼽히는 무분별한 카드 남발로 인한 카드 대란조차도 후에 카드 사용의 정착으로 투명한 세금 징수의 토대가 되는 전화위복과 선견지명으로 역사는 기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분단논리는 공고했다. 한국보수는 한국중도의 15%만 포섭하면 여전히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이명박 정권의 집권이었다.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누를 때 48.67% vs. 26.14%로 무려 22.53% P가 된 것은 여전히 분단논리의 뿌리가 매우 깊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또다시 박근혜 정권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51.55% vs. 48.02%로 3.53% P 차이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탄생되었던 때보다 벌어졌다는 것이 뿌리 깊은 분단논리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탄핵으로 한국보수의 네 번째 분열은 시작되었고 드디어 한국보수 세력이 정량적으로 축소되기 시작했다. 박정희로 불리는 개발독재 옹호 잔존 세력은 궤멸적으로 몰락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부패와 반민주주적 행태와 87 민주화 세대의 고령화로 대한민국 인구 구성에서 한국진보의 비율이 높아진 것이 공고했던 분단논리에 정량적 비율 변경을 가져오게 만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탄생되었을 때 41.08% vs. 24.03%로 17.05% P로 한국진보는 가장 큰 차이로 한국보수를 이길 수 있었다. 이때 50%를 넘지 못한 것은 한국중도의 많은 비중이 안철수 후보에 21.41%로 지지를 보여준 결과였다.
결국 70년 가까이 공고했던 분단논리는 해체되기 시작되었지만 이데올로기의 공백을 새롭게 차지한 세력이 있었다. 바로 천민자본주의적 양식에 익숙한 세대의 등장이었다. 이 세대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자본주의적 이익에 매우 민감했다.
아직 남아있는 분단논리 지배 세력과 천민자본주의 지배 세력이 결합되어 윤석열 정권을 만들었다. 한국보수가 다시 재집권했지만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은 48.56% vs. 47.83%으로 불과 0.73% P에 불과했다.
역설적으로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한국보수의 궤멸을 예고한다. 국민들에게 실체가 불분명했던 친일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되었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의 체계적 시스템이 붕괴되는 사태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국가의 안위와 보안 문제는 등한시되어 졸속으로 시행된 대통령실 이전의 문제점이 계속 나오고, 이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이태원 사태는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한국중도가 한국보수에 대해 실체가 없다고 생각했던 친일 문제는 수면 위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소수이지만 한국보수 속에 친일 세력이 존재하고 이들이 한국보수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말았다. 이 결과는 한국중도가 한국보수에 대해 향후 상당기간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묵인으로 시작된 친일성향적인 정책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사법적 판단마저 무시하는 징용공, 위안부 문제, 독도 조형물 제거, 독립기념관 관장 선임 문제까지 한국보수에 친일적 정황적 증거는 상당하다.
북한과의 문제는 최근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두 국가론'이라는 반헌법적 이론이 등장할 정도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아무리 윤석열 정권이 대북 문제에 대해 극단적인 양상을 보인다고 한 때 북한 문제에 정통했던 일부 정치세력이 그에 대한 반동으로 '두 국가론'에 찬동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는 40대 이하 세대의 통일에 회의적인 경향성과 최근 남북 관계를 현실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반헌법적이고 반역사적인 주장이다.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소식을 듣게 된다면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민은 자유롭게 통일 정책에 대해서 어떤 주장을 할 수 있어도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함부로 설익은 통일 정책을 발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김대중이라는 천재 수준의 창의성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면 한국의 통일 문제는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 김영삼 정권에서 한국에 전쟁의 위험이 농후해서 미국인들이 철수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을 때 이를 극복한 김대중의 통일 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창의적이었다.
김영삼 정권 때 심야 토론에서 통일 문제를 다룰 때 패널들은 이구동성으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교착 상태에서 퇴행하던 통일 문제를 역전시킨 김대중 정책은 드라마틱했다.
오늘 주제가 아니어서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겠지만 윤석열 정권의 대책 없는 대북 접근에 대한 반동으로 책임 있는 정치인과 통일 정책가들이 함부로 역사의 죄인이 되지를 않기를 바란다. 김대중과 같은 천재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편 최근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엽기적인 행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아직 확정적인 증거가 제시되지 않아서 의혹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김영선 전의원 관련 녹취록과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의 녹취록은 김건희 게이트의 가능성을 정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JTBC는 대통령 당선 후 연락한 적이 없다는 이종호와 김건희의 통화 내역을 공개했다. 입만 열만 거짓임을 언론 보도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지면이 부족해서 차마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윤석열 정권의 실정은 향후 한국보수의 궤멸을 암시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전대표가 민주개혁 세력의 20년 집권을 논했다가 된서리를 맞았지만 한국중도는 더 이상 한국보수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친일세력의 등장과 독재적 정치행태의 부활은 한국보수를 친일과 독재 세력의 잔존 세력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윤석열 정권의 유일한 역사적 치적은 한국보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로 대표되고 있는 한국권력의 마지막 보루도 흔들리게 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경찰,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군부와 정보부 세력이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 의해 와해되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검찰 권력도 윤석열 정권을 끝으로 와해될 것이다.
아마도 검찰청은 기소청으로 변화될 것이고 검찰총장은 기소청장으로 그 위상이 축소될 것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되는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서울대 법대와 사법고시로 대표되었던 한국 엘리트 세력의 민낯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객관식 성적으로 공부하지 않고 평생 동안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의 종말이 예고되고 있다. 한 때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이 결코 실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 수많은 검찰 출신 정치인과 관료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결과는 한국보수 세력의 궤멸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해찬 진보 개혁 20년 집권론은 한 텀을 쉬었지만 실현될 것이다. 한국중도는 한국보수의 민낯을 보았고 그들의 실력을 보았다.
고등학교 때와 사법고시 성적은 결코 실력이 될 수 없음을 국민들이 알게 되었고, 이미 실질적으로 공부를 통한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어린 세대들의 성장은 그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고등학교 성적, 학벌, 학연, 지연, 인맥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적나라하고 퇴행적인 모습을 그대로 노정시켰다.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기득권 세력인 한국보수의 민낯이 분장 없이 까발려지는 계기를 윤석열 정권은 만들었다.
그 정점에 있는 윤정권 대통령실의 고위 공직자의 녹취록의 공개는 한국보수의 궤멸의 서막으로 보인다. 그동안 청와대에서 이런 인적 구성의 민낯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대통령실 고위 공직자 한 사람의 일탈이라고는 볼 수 없는 학연, 지연, 인맥으로 점철된 처참한 현실적 대화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개입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을 시작으로 비로소 그 막이 열릴 것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행정관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보수의 정점인 대통령실의 고위공직자의 값싼 대화를 듣노라면 한국보수의 궤멸은 시작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금후 20년 이상 한국보수의 집권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국보수가 친일과 독재의 잔존세력이 아니라는 명확한 선언과 무너진 실력을 복원하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낸다면 그 기간은 짧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 한국보수의 민낯을 보여준 대통령실 고위공직자의 녹취록 공개
서울의 소리와 저널리스트가 공동으로 대통령실 고위공직자 김 모 씨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후 김 모 씨가 김대남 선임행정관으로 밝혀졌고 변호사를 통해 의도적으로 공천과 관련된 허위 사실을 전달했다고 한 언론이 반론 보도했다.
만약 김 전 행정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국보수의 정점인 대통령실에서 아직도 정치공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고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고위공직자가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저급함을 드러낸 것이다.
서울의 소리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용인갑에 대통령실 인사 비서관인 이원모를 공천하는데 개입했다고 증언하는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의 녹취록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녹취록에 언급된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보도가 완전히 허위라고 볼 수는 없는 정황 증거가 다수 존재한다.
이원모가 용인갑에 전략 공천이 되었고, 김대남이 이에 대한 반대 공작을 하다가 그만두고 이원모 당선을 위해 노력한 후 공기업 감사 자리로 자리를 옮긴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과정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공천 개입 의혹은 수사를 통해 진실 여부가 밝혀질 것이다. 이는 최고권력자의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검찰보다는 특검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녹취록 보도의 파급력은 단순히 김건희 공천 개입보다 더욱 지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보수의 정점인 대통령실의 고위 공직자의 언행의 저급함과 이를 둘러싼 인맥들의 수준을 통해 한국보수의 궤멸의 서막처럼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환상은 아닐 것이다.
■ 한국보수 궤멸의 서막 - 향 후 20년 이상 집권 불가 가능성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7월 채상병 특검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윤석열 탄핵이 되면 보수가 궤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언급했다.
이는 홍준표 시장이 채상병 특검을 찬성하는 국민의힘 내부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고 이는 윤석열 탄핵과 보수궤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을 표명한 취지의 보도였다.
하지만 홍시장의 바람과는 달리 윤석열 탄핵 기차는 이미 출발한 듯해 보인다. 최근 연속적으로 드러나는 김건희 공천 개입 관련 녹취록은 추가적인 보도나 특검 수사를 통해 확실한 증거가 제시된다면 윤석열 탄핵의 트리거가 될 것이다.
이는 홍시장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보수궤멸로 이어질 것이고 한국보수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향 후 20년 이상 한국보수는 집권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민주개혁 세력의 20년 집권 플랜을 제시했다가 된서리를 맞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 분단논리와 지역감정으로 정권을 연장시켜 왔던 박정희 집권 시기 한국적 보수세력의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그 결과는 선거로 증명되었다. 늘 박정희 정권은 과반수를 넘는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하며 집권했다.
40대 기수론으로 바람몰이를 했던 김대중 후보가 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 45.25%를 득표했지만 53.19%의 박정희 후보를 꺾지 못했다.
물론 김대중 후보의 선전으로 인한 박정희의 위기감으로 이후 유신 독재에 의해 간접 선거가 실시되고 분단논리와 지역감정 조장은 상당 기간 한국보수 세력을 과반 이상으로 유지시켰다.
한국 전쟁 이후부터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한 분단논리의 뿌리는 공고했다. 이승만 정권의 집권 시기도 50% 이상의 득표로 항상 집권했던 이유도 분단논리였다.
발췌개헌으로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꾼 선거인 한국전쟁 시기 2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후보는 74.6%의 득표로 집권한 것도 분단논리였다.
이런 분단논리는 상당기간 보수 세력의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4.19 혁명으로 분단논리는 잠시 주춤했다. 한국보수의 첫 번째 균열이 시작되는 사건이었다.
5대 대통령 선거 때 박정희 후보가 46.64%로 야당인 민정당 윤보선 후보(45.09%)를 1.55% P 차이로 간신히 따돌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후 6대 대통령 선거(박정희 51.44% VS. 윤보선 40.93%), 7대 (박정희 53.19% VS. 김대중 45.25%), 8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박정희 99.92%, 9대 박정희 99.85%를 기록했다. 분단논리와 지역감정이 완전히 고착화된 것이다.
심지어 박정희 사망으로 치러진 10대 대통령 선거에서조차도 간접선거였지만 최규하는 96.29%를 득표했다. 이후 11대 전두환 99.37%, 12대 전두환 90.11%를 기록하다가 87 민주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면서 분단논리는 2차 균열이 시작되었다.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투표에서부터 한국보수 세력은 50% 이상의 압도적 지지에서 35% 근처를 맴돌게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중도의 10% 안팎을 포섭하면 집권할 수 있었다. 보수를 결집시키거나 진보를 분열시키는 전략만으로도 집권이 가능했다.
13대 노태우 36.6%, 김영삼 28%, 김대중 27%를 보면 진보 개혁 세력의 분열 전략으로도 충분히 집권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것인 진보의 결집이 분단논리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었다.
3당 합당으로 탄생된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진보개혁 단일 후보였던 김대중 후보를 42% VS. 33.8%로 압도한 것은 분단논리의 아성은 무너뜨리기 힘든 것임을 반증했다.
하지만 한국보수의 세 번째로 균열은 IMF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 어떤 민주개혁 세력도 집권을 허용하지 않았던 분단논리는 IMF에 의해 작은 틈을 보였고 준비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후보가 그 틈을 뒤집어 집권했다.
IMF 조기 극복,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 핵심 군사 전력의 후방 이동으로 실질적 평화 정착을 가능케 한 창의적 대북 정책, 인터넷 인프라 구축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선진국 토대 구축, 한일월드컵 성공적 개최 등 김대중 정권의 치적으로 분단논리가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노무현 정권이 탄생했다.
하지만 여전히 35%의 한국보수 세력은 분단논리와 지역감정을 고리로 여전히 결집해 있었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48.7% VS. 정동영 26.1%, 18대 박근혜 51.6% VS. 문재인 48%는 이를 증명해 준다.
하지만 박근혜 탄핵은 한국보수의 네 번째 균열을 가져왔다. 드디어 35% 공고한 콘크리트 지지층은 붕괴했다. 이제는 분명 한국 보수는 30% 미만으로 지지기반이 줄어들었고 한국진보는 87세대의 고령화와 인구 변화로 25%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여전히 한국보수 세력의 5% P 정도 많은 비중이었지만 결국 한국중도 세력을 누가 더 포섭하는가가 한국 정치의 향배를 좌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채양명주'를 포함해서 각정 친일 정책,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부패와 국정농단 의혹은 한국보수 세력의 또 다른 차원의 균열이자 궤멸적 몰락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 한국 보수 세력은 20% 미만으로 쪼그라들게 되었고, 30%를 육박하는 한국진보 세력에게 상당기간 집권을 내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최근 22대 총선 결과는 이러한 상황을 증명한다. 민주개혁 세력인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은 득표율 58.3%로 175석, 한국보수세력인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는 108석 36%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합친 의석은 187석으로 보수세력을 모두 합친 92석을 압도했다. 이미 보수 궤멸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일회성 결과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87 민주화 세력의 고령화로 인구 구성상 과거 보수 일변도인 노년층도 한국보수에 편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의 실정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최근 김건희 총선 개입 의혹 관련 녹취록은 한국보수의 부패성과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즉흥적인 2000명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료대란을 통해 한국중도는 한국보수의 실력을 실증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윤석열 정권은 기득권의 장벽으로 둘러싸여 그 내부를 알 수 없었던 한국보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시민들에게 노정하는 역설적인 치적을 만들어 냈다.
이를 통해 향 후 20년 이상 한국보수는 집권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한국보수의 궤멸적 패배는 이어질 것이다.
■ 한국보수의 실낱같은 희망 - 친일과 독재 잔존 세력 청산
한국보수의 실낱같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보수는 태생적으로 생존 본능이 뛰어나다. 꺼삐딴 리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능수능란하게 변신한다.
박근혜 탄핵으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던 한국보수는 박근혜를 탄핵했던 윤석열 검찰 세력을 받아들이는 엽기적인 선택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추후 역사학도들은 박근혜를 탄핵했던 세력에게 박근혜 탄핵을 반대했던 한국보수 세력이 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현상에 대해 많은 논문을 양산할 것이다.
이는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와 분단 그리고 독재 권력에서도 살아남은 놀라운 생명력을 지난 한국보수의 근원을 생각하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일을 숨기고 분단논리를 강화하면서 생명력을 유지했던 한국보수의 변신 능력에 한국중도는 상당히 현혹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윤석열 정권 탄생은 그 절정이었다. 하지만 절정 이후에는 내리막이 있을 뿐이다. 윤석열 정권의 실정으로 한국중도는 더 이상 한국보수의 전술적 변신에 속지 않을 것이다. 진정성 있는 변화에도 상당 기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결국 한국보수는 진정성 있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보수를 떠받쳤던 친일과 독재 잔존 세력을 완전히 청산해야 할 것이다.
합리적 보수라는 유 모씨와 젊은 보수라는 이 모씨가 결코 한국보수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세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친일과 독재에 대한 완벽한 부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진보 세력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한국보수가 김구 선생을 그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섬기는 날이 오지 않는다면 한국보수의 집권은 상당 기간 어려울 것이다.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태균 블랙박스에 들어간 한국보수 - 그 결말은 궤멸 (21) | 2024.10.10 |
---|---|
디올백 관련자 불기소 - 청탁금지법 형해화 - 한국보수 궤멸에 일조 (36) | 2024.10.03 |
뉴스토마토 후속 보도 파장 - 공은 김건희, 이준석에게 (44) | 2024.09.19 |
한국갤럽 윤대통령 긍정평가 20% - 친일, 총선 개입 의혹, 의료 대란 영향 (15) | 2024.09.13 |
뉴스토마토 vs. 김건희 - 총선 개입 단두대 공방 - 증거 제시 시 탄핵 트리거 (18) | 2024.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