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넷플릭스로 다시 보는 '다음 소희'-소희는 왜 춤을 췄을까?

bonanza38 2023. 7. 22. 07:59

어떤 사람은 1.5배속으로 이 영화를 볼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단언컨대 이 영화의 호흡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정속으로 시청하기를 권고한다. 피가 낭자하고 아무렇지 않게 주검이 쏟아지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를 맞이할 것이다. 

콜센터 상담 실습생 소희역의 김시은

소희는 당하기만 하는 순둥이는 아니다

실업계 고등학교 실습생 소희. 그녀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소희는 당하기만 하는 순둥이는 아니다.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지만 술집에서 술도 마시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 친구를 폄하하는 사람을 보면 욕지거리를 한다. 부당한 상사의 지시에 당당하게 맞서기도 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예상했던 착하고 착하기만 한 그런 소희는 아니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소희라는 캐릭터가 전형성을 벗어던지면서 영화는 예측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고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단단히 땅에 뿌리 박혀 있는 사실주의 영화 속에서 스타 배두나도 오유진 경감일 뿐

오유진 경감역의 배두나

영화를 보기 전에 배두나가 처음부터 영화를 휘저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배두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어떤 사건으로 허무주의에 빠진 오유진 경감만이 있을 뿐이었다. '다음 소희'의 유일한 스타 배우인 배두나의 대사로 감독은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과하지 않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범주 내로 절제했다. 혹자는 단순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오유진 경감은 현실에 없는 판타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런 판타지라도 없었다면 관객들의 먹먹한 마음은 해소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장마철 넘치는 물을 막았던 수문을 여는 순간처럼 오유진 경감의 절규는 관객들의 답답한 마음을 뚫어주는 유일한 판타지였다. 철저한 리얼리즘 영화에만 허용되는 청량제 같은 판타지. 배두나는 충분히 그 소임에 충실했다.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 안 써."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다음 소희가 양산되는 것을 힘없는 일개 형사가 발버둥을 치며 막아보고자 절규하는 모습 속에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먹먹함이 밀려왔다. 

 

소희는 왜 춤을 추었을까? 

오유진 경감은 소희가 춤을 추었던 댄스팀을 찾아서 탐문 조사를 마치고 연습실을 나서면서 팀원들에게 물어본다. 

"근데, 그 친구가 춤은 왜 쳤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감정이 끓어오르면서 영화를 보면서 저절로 답이 나왔다. 

"인간이니까! 모두 똑같은 인간이니까!"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사람이면 쥐 죽은 듯이 천민자본주의의 포식자들이 시키는 대로 최하위 먹잇감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형사든 실습생이든 그 누구든 간에 모두 똑같은 인간으로서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 나비처럼 자유롭게 춤을 추고 싶었을 것이다. 

소희의 댄스

우리의 몸을 칭칭 동여매고 낭떠러지로 내모는 천민자본주의의 굴레. 우리 모두는 이 굴레 속에서 누구라도 다음 소희가 되는 순번을 받았는지 모른다. 내 번호가 불러지면 선택의 여지없이 누구라도 다음 소희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가? '다음 소희'는 우리에게 이 물음을 잔잔하게 너무도 잔잔하게 던지고 있다. 소희의 그 강물처럼...

 

PS. '도희야'를 연출했던 정주리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과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앙상블을 보여준 모든 배우에게 찬사를 보낸다.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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