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문"을 보기 전에 망설였다. 1000만 관객이 들었던 김용화 감독의 전작 '신과 함께'1,2편이 그다지 마음에 드는 작품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일부 캐스팅된 배우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영화 선택에 가장 중요한 감독과 배우에 대한 의구심으로 보통 개봉 첫째 날에 보는 루틴을 지키지 못하고 둘째 날에 고개를 갸웃하며 영화를 봤다.
한국형 SF 영화의 시금석이 될 작품
그동안 한국 SF 영화 중에 성공적인 영화는 없었다. 최근의 넷플릭스 '승리호'는 많은 자본을 투입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더문'은 달랐다. CG에 대해서는 할리우드 히어로물과 비교하기는 힘들겠지만 '더문'의 시나리오에는 충실한 CG였다. 굳이 히어로물도 아닌 작품에 히어로물과 같은 CG와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문제는 서사와 연출력이다. '더문'은 시나리오, 플롯 구성, 시퀀스 전개, 편집을 아우르는 연출력에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을 만큼 개연성과 극적 긴장감을 유지했다.
서스팬스와 스릴로 관객을 몰입하는 데 성공한 '더문'
'더문'은 서스팬스와 스릴을 유지할 수 있는 많은 시퀀스가 따로 놀지 않고 조밀하게 연결된 작품이다.
극 초반 다큐멘터리 형태로 시작된 서사를 통해 '나래호' 발사 실패와 '우리호' 발사를 설명하다가 다시 드라마로 전개되는 부분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극의 중요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도 작위적이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까지 관객들에게 극적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선우와 김재국 박사의 설정은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달착륙 임무와 귀환 과정의 여러 시퀀스는 극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했다. 옆에서 관람하던 여성 관객은 달이 착륙하는 순간 긴장에서 풀어졌는지 스트레칭을 했다. 이런 장면은 극이 마무리될 때까지 서너 번이 더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긴장감에 어깨가 굳을 수 있으니 팔짱을 끼고 관람할 것을 권유한다.
또한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배가 시킨 것은 음악이었다. 극의 중요 요소마다 적절한 음악 구성이 빛나는 작품이었다. OST에 임팩트가 있었던 '국가대표 1,2', 그리고 '파파로티'의 이재학 음악감독을 김용화 감독이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
누가 '국뽕', '신파'라고 하였는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댓글에 '국뽕'과 '신파'라는 용어를 보았다. 한마디로 말도 되지 않는 억지 주장이다. 눈물이 나면 '신파'인가? 억지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 '신파'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수일과 심순애'를 한 번 관람하기 바란다. 그것이 '신파'다. 요즘 '신파'라는 말을 무분별하게 난발하면서 감정을 자극하기만 하면 무조건 신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충분히 납득할만한 논리적 설명을 해야 설득력이 있다. '더문'은 충분히 개연성을 가지고 울림을 주는 영화이다. '신파'라고 말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그리고 '국뽕'? 이것은 무슨 억지 주장인가? 그렇다면 미국의 많은 히어로물은 '미뽕'인가? 그리고 영화 마지막 시퀀스는 분명 이 영화가 '국뽕'영화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요즘 '신파'와 '국뽕'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단언컨대 '더문'은 '신파'나 '국뽕' 영화로 치부될 수 없는 수준의 영화이다.
김희애가 돌아왔다. 설경구의 연기도 새로웠다.
이 영화를 첫째 날 보지 않고 둘째 날에 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쌍천만을 기록했다고 하지만 필자는 '신과 함께'가 그럴만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김용화 감독이 또 그런 류의 영화를 만들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관객들에게 잔잔한 미소를 줄 수 있는 유머러스한 대사도 적절했다. 신과 함께처럼 무분별하게 유머 코드를 난발하지 않았다. 또한 홍승희의 캐스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캐스팅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이번 영화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홍승의의 캐스팅은 감독의 탁월한 안목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김용화 감독의 연출력에 대한 의구심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이 영화를 둘째 날에 본 두 번째 이유는 김희애와 설경구를 캐스팅한 것이었다.
김희애는 최근 몇몇 영화에서 실망스러웠다. 특히 미니시리즈 '퀸메이커'에서는 이젠 김희애가 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미니시리즈 '밀회'와 비슷한 재벌의 집사 역할을 했지만 '퀸메이커'에서 김희애는 과장되고 역에 몰두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물론 이런 점은 연출이나 작가의 잘못이 크지만 그걸 안다면 배우 김희애가 선택을 하지 않거나 했다면 제대로 소화했어야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것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배우 김희애는 달랐다. 어깨에 힘을 내려놨다. 철저히 NASA 책임자로서의 임무를 무난하게 수행했다. 연기에 작위성이 없었다. 특유의 김희애풍의 연기도 없었다. '아들과 딸'부터 김희애는 영리한 연기자였다. 사실 김희애가 대중을 실망시킨 것은 최근 몇 작품에서였다. 이번 작품은 김희애 연기 인생에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화려한 원톱 여주인공에서 힘을 빼고 조연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좀 더 롱런할 수 있는 진정한 연기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배우 김희애의 변신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설경구였다. 김희애만큼 설경구도 그만의 연기풍이 분명한 배우이다. 박하사탕 이후부터 그의 연기에서 늘 풍겨 나오는 냄새를 모두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만의 특유의 과장되고 폭발하다가 급속하게 냉정을 되찾는 연기는 없었다. 완전히 다른 톤과 매너를 보여주었다.
어쩌면 두 배우를 작품에 녹아낸 감독의 역량에 찬사를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대 스타인 두 배우를 극 중 인물에 맞추어 완벽하게 조율한 것은 감독의 역량이다. 김용화 감독, 설경구 배우, 김희애 배우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힘든 무중력 액션을 보여준 도경수를 비롯한 많은 배우들의 앙상블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의 문제점은 사운드 그리고 마케팅 실패
모든 영화가 완벽하지는 않다. CG도 더 완벽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전술했던 것처럼 이 영화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난 CG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거슬렸던 것은 아마도 사운드였을 것이다. 댓글에서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발음이 어눌해지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통신상으로 들려오는 이펙트 처리를 통해 현실감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이 불편하다면 그런 의도는 실패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특히 요즘 OTT를 즐겨보는 MZ 세대들은 우리 영화에서도 자막을 켜고 보는 것에 익숙하다. 발음이 불분명한 부분에서 자막처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감독의 의도와 그에 따른 선택이었지만 대중 상업 영화를 추구하는 감독의 영화 스타일로 본다면 자막 처리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마케팅을 완전히 실패했다.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 그리고 마케팅하는 것을 보면 이 영화의 진가를 전혀 홍보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도록 예고편과 홍보 마케팅을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좀 더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좋은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쿠키 영상은?
쿠키 영상은 있다. 하지만 약간 애매한 측면도 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완전히 올라가지 않고 일부만 올라간 상태에서 쿠키 영상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쿠키 영상이라고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엔딩 크레디트가 나왔을 때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만족도를 알 수 있다. '한국형 SF 영화는 언제쯤 성공적으로 랜딩을 할 수 있을까?' '댓글을 보니까 별로인 것 같은데...'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 경계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봤다. 언제쯤 재미없는 부분이 나올까 의구심을 가지면서 보았다. 하지만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우려했던 부분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후 3시 45분 영화인데도 많은 관객들이 있었고 그 관객들이 엔딩 크레디트가 나오고 쿠키 영상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만족한다는 무언의 증거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한 마디만 하겠다. 쿠키 영상의 주제는 '화해'.
영화에 비해서 좀 짠 평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보고 싶은 보고 싶은 관객의 채찍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주기 바란다. 이 영화를 만드는데 힘써 준 제작, 스태프, 연출, 배우 모두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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