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상에서 잠시 휴식을 가져다주는 시간이다. 많은 영화가 있지만 편안하게 그렇지만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화를 선택했다. 2001년과 2002년 사이에 미국 보스턴을 흔들었던 가톨릭 신부들의 추문 사건을 밀도 깊게 파헤친 영화 스포트라이트로 막바지에 다다른 성하를 시원하게 날려 보내길 바란다.
No Suspense, No Thrill, but Continuous Immersion
이 영화에는 서스펜스와 스릴로 가득 찬 시퀀스들의 나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많은 영화들은 관객들이 잠시라도 한눈팔지 못하게 하는 장치로 가득 찬 시퀀스를 나열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영화가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예측 불가능한 서스펜스나 스릴이 없어도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관객들을 지속적으로 몰입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영화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무엇이 관객들에게 지속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지 그 비결을 파헤쳐 보자.
Realism - 분장으로 가리지 않은 명배우들의 선명한 주름
마이클 키튼은 쭈글쭈글한 주름으로 유명하다. 최근 방영된 영화 플래시에서도 그의 주름은 더욱 쭈글쭈글해진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분장기 없는 얼굴로 등장한다. 헐크로 유명한 마크 러팔로, 심지어 아름다운 여배우 레이첼 맥아담스조차도 화장기 없는 얼굴로 등장한다. 탐사 전문 기자들이 번질번질한 화장품으로 범벅이 된 모습으로 등장한다면 관객들은 몰입하기 힘들 것이다.
이 사건은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을 배경으로 한다. 2015년에 개봉된 영화지만 2000년 초반의 의상과 차,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용했던 폴더폰 등으로 완벽하게 그 시대를 묘사했다. 아직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 속에서 영화는 관객들을 몰입하도록 이끌었다.
이 영화는 서스펜스와 스릴을 기대할 수 없는 소재와 주제를 담고 있다. 이런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관객들에게 지속적으로 몰입감을 주는 기제로 감독은 리얼리즘을 채택했다. 한국에서는 머리카락만 잘라도 광고가 떨어져서 다시는 헤어컷을 하지 않은 여배우가 있는 실정을 고려한다면 할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에게 리얼리즘을 설득한 감독의 리더십에 찬사를 보낸다.
스토리텔링, 대사, 카메라 워킹, 연기력의 총화
사람이 수십 명은 죽어나가야 하고 피가 난무하는 최근 영화를 보면 이 영화는 전혀 자극적인 장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충분히 자극적인 소재를 보여 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온갖 감언이설로 합리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쉬운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운 선택을 하면서도 관객들에게 몰입감을 주는 것이 연출력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의 연출력만이 전부는 아니다. 수많은 대사로 가득 찬 극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텔링, 즉 시나리오가 탁월했다. 톤과 매너를 극 말미까지 유지하면서 뒷심을 내는 스토리텔링은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관객들은 피곤하게 하지 않게 카메라 워킹도 한몫을 담당했다. 스포트라이트 팀에서 4명의 기자들의 대사가 오고 가는 장면을 아주 천천히 줌아웃하는 카메라 워킹도 관객들에게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것에 유명 스타 배우들이 어깨에 힘을 빼고 배역에 충실한 연기력까지 결합하여 최상의 몰입감을 선사한 것이다.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에 대비되는 한국 언론의 비참한 현실
미국의 언론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언론도 자본과 여러 유형의 권력에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신임 국장 마크 배런이 등장하면서 그동안 성역시 되었던 보스턴 지역의 교회 성작자들의 문제를 파헤치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개인이 시스템을 추동할 수도 있고 개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시스템이 개인을 추동할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사건을 파헤치는 시발점은 신임 국장의 등장이었다면 마무리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넘어가지 않고 교회와 사회의 시스템 문제로 사건을 확대시키는 것이었다. 개인과 시스템의 적절한 trade-off를 절묘하게 이 영화는 그려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의 현실은 어떠한가? 언론인들이 학맥, 인맥 등에 얽히고설켜서 시스템의 수단적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언론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한동안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부동산으로 떼돈을 버는 사람도 있고 정치권에 줄을 대서 국회의원이나 권부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개인과 시스템 모두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망가진 개인이 시스템을 파괴하고 파괴된 시스템이 개인을 피폐하게 하는 악순환이 연속이다. 제대로 된 언론은 오히려 소수로 전락하고 다수를 이루는 언론은 정상적으로 기능을 작동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보고 있다. 가짜 정보와 확증 편향으로 난무하는 보도는 시민들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어두운 터널로 이끌고 있다. 하지만 항상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다. 레거시 언론의 영향력은 이제 거의 소멸되고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영향력은 이런 상황이라면 더 급속하게 사라질 것이다. 이제는 선택받은 언론인이 시민을 추동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들이 언론을 추동하는 시도로 전환하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개인과 시스템의 적절한 trade-off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스포트라이트 평점
최근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서 매우 창의적인 접근으로 영화를 전개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에게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비판을 했다. 하지만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다층적 구조로 의도적 집중을 요구하지 않는다. 플래시백이 전혀 없고 단층적인 영화이지만 전혀 지루함이 없이 관객들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영화이다.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공유하게 만들어 준 영화 제작자, 감독, 배우, 스텝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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