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일본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결정을 내렸다. 한국은 어떤 항의 표시도 없이 동조했고 미국은 방조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기력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한 주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2006년도 개봉관에서 보았던 영화 '괴물'이 떠올랐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OTT를 찾아보니 '괴물'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작금의 상황과 너무나도 기시감이 있는 영화라서 이미 보았던 영화지만 새벽을 지새우며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평소 영화 후기를 하면서 스포일러에 주의했지만 작금의 상황과 닮은 영화 '괴물'에서는 최소한의 스포일러가 있음을 밝힌다.
■ 한강에 포름알데하이드를 쏟아붓는 첫 장면과 너무나 기시감이 있는 작금의 상황
영화 '괴물'의 첫 장면은 미군 부대에서 무책임하게 포름알데하이드를 한강에 방류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영화에서 나오는 미국인 상관은 한국인 부하에게 엄청난 양의 포름알데하이드를 하수구를 통해 한강으로 흘려보낼 것을 지시한다. 정상적인 처리가 귀찮아서 쉬운 처리를 지시한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한국인 부하직원은 별다른 저항 없이 미국인 상관의 지시를 이행한다. 작금의 상황과 너무도 기시감이 있다. 특히 포름알데하이드를 무단 방류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난 문제보다는 포름알데하이드 병 위의 먼지에 더 신경을 쓰는 상관의 모습은 매우 상징적이다.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외교적 항의나 적절한 대응 없이 오히려 세금으로 핵 오염수 방류를 옹호하는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현 정부의 작태는 국민을 포름알데하이드 병 위에 있는 먼지와 다름없이 여기는 것 같아 몹시 불쾌하고 씁쓸했다.
■ 구조적으로 괴물을 만드는 사회 시스템 vs. 해결은 결국 소시민의 몫
영화 괴물은 주제는 심플하다. '가족애'. 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그렇게 심플하지는 않다. 강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괴물을 만드는 강자와 그들이 속한 사회 시스템의 오만과 횡포에 대한 풍자라는 무거운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강자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만든 괴물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상처를 입지만 결국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힘없는 소시민의 몫이라는 매우 강한 메시지를 영화 '괴물'은 함유하고 있다. 강자들이 만든 괴물을 강자들의 해결 시스템인 '에이전트 엘로우'는 해결하지 못한다. 한강에서 라면을 파는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헌신적이지만 무지한 아버지, 민주화 투쟁으로 대학 생활을 보내고 백수가 된 삼촌, 늘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해서 금메달을 타지 못하는 양궁선수 고모를 둔 해맑은 중학교 1학년 소녀로 구성된 변변치 않고 평균 이하처럼 보이는 가족. 그 힘없고 무능해 보이는 소시민들로 구성된 가족의 일차원적이고 본능적인 '가족애'로 강자들이 만든 괴물을 결국에는 해치우고 만다.
영화 '괴물'에서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를 있다고 기만하는 것처럼 생길 수 있는 가능성 있는 미증유의 원자로 노심 멜트다운 처리 오염수를 마치 과학적으로 검증이 완료된 것처럼 말하는 것 역시 기만이다.
공사장 석면이 그랬고, 가습기 살균제가 그랬던 것처럼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편리함을 위한 내린 쉬운 결정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마루타처럼 희생시키고 나서야 그 폐해를 깨닫는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 우리의 세금으로 만든 홍보 영상에 나온 과학자들에게 묻고 싶다. 가습기 살균기와 공사장 석면의 위해를 과학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었는지, 증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분적 사실을 과학적이라고 접근해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태를 만드는 것이 진정 과학적인 접근인지 묻고 싶다.
■ 영화 '괴물'은 무거운 메시지를 가장 쉬운 언어로 관객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한 영화
영화 '괴물'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봉준호 장르의 궤를 이어가는 작품이다. 그가 부끄러워하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마더', '옥자', 그리고 '기생충'까지 모두 무거운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관객들에게 가독성 있게 전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메시지와 가독성의 trade-off를 해낼 수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이라고 평하고 싶다. 최근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대해 플롯의 미학과 창의력에 대해서는 독보적이지만 과연 관객들에게 가독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영화적 '스노비즘'에 빠져 관객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봉준호 장르를 개척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색깔로 영화를 만드는 장인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4K 리마스터링으로 지난 3월 8일에 영화 '괴물'이 재개봉된 것은 '괴물'의 작품적 우수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재개봉을 기념하는 GV에서 봉준호 감독은 여러 가지 재미있는 영화 '괴물'에 대한 후일담을 털어놓았다. 힘없는 사람들이 국가,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영화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러다 보니 괴물 영화면서 가족 영화 그리고 정치적인 풍자로 확장되었다고 주제 의식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그리고 어려움도 토로했는데 한국에서는 110억이라는 거액을 투자받기가 힘들었고 몬스터 장르에 필요한 비주얼 이펙트 회사에서는 이 돈으로는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아이러니를 소개했다. 영화 '괴물'은 당시 상당한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할리우드 몬스터 장르물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비용으로 제작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작품이 나온 것은 연출력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은 아울러 손을 떠난 작품을 보는 것은 어렵다고 말하면서 편집에서 후회되는 부분이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부분은 비밀이라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유발했다. 영화 '괴물'을 오랜만에 보면서 봉준호 감독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비밀이 몇 군데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영화 음악은 아닐지 궁금하다.
영화 '괴물'에 대한 감독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영상이 있어 소개한다.
■ 영화 '괴물' 평점
영화 '괴물'은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흥행성을 갖추었지만 동시에 주제 의식이 분명한 작품성도 출중한 영화이다.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적 문제로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약간의 흠이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 보아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 '괴물'은 작가만의 스노비즘에 빠지지 않았다.
영화 '괴물'은 관객들이 머리를 과도하게 쓰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주제 의식을 읽을 수 있는 가독성을 제공한다.
영회 '괴물'은 쉽다. 하지만 작금의 무거운 상황에서도 생각날 만큼 진중함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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