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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 후기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위한 변명

bonanza38 2023. 8. 15. 21:15

너무나 지루한 영화였다. 하지만 누군가 이 영화를 추천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언컨대 추천한다고 말할 것이다. 영화는 항상 재미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양자역학처럼 모순된 상황이 발생했다. 함께 본 10대 청소년들은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지루한 영화라고 실망했다. 필자도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했을 때까지 두 시간 가까이 매우 지루한 영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평점은 5점 이하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려 두 시간을 실망스럽게 보다가 마지막 한 시간 동안 바닥이었던 평점이 올라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분명 이 영화를 본 일반적인 사람들은 너무 지루한 영화라고 혹평을 할 것이다. 필자도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만 보았을 때 만듦새가 좋다고 평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에게 너무나 많은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해서 곱씹을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영화의 쓰임새는 충분하다는 생각에 추천을 권하고 싶다. 물론 재밌지 않은 영화를 추천한 대가를 받으라면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충분히 벌을 받을 가치가 있기에 위험한 추천을 한다. 

영화 오펜하이머- 용산 CGV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위한 변명

영화가 재미없으면 재미없는 것이고 재밌으면 재밌는 것이다. 필자가 누구에게 돈을 받아서 영화 후기를 남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없으면 지루하니까 보지 말라고 혹평을 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런데 굳이 필자에게 어떤 이익을 주지도 않는데 재미있지도 않은 영화를 만든 감독을 위한 변명을 쓰는 생경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도 전작인 '테넷'을 보고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는 보지 않을 것이라는 소심한 복수를 결심한 사람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트리니티 실험을 다룬 시퀀스가 끝나면서 한 시간 동안의 놀라운 경험은 그를 위한 변명을 쓸 수밖에 없게 한다. 

오펜하이머 공식 예고편

흑백컬러의 차이

영화에서 흑백으로 묘사된 부분과 컬러로 묘사된 부분의 차이는 영화를 모두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두 시간의 영화 빌드업 과정이 너무 지루해서 관객들에게 흑백과 컬러 영화의 차이를 추적하는 과정마저 무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것이 관객들의 지루함을 그나마 덜어주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은 범위에서 말하자면 '로버트 오펜하이머 vs. 루이스 스트라우스'라고 말할 수 있다. 극 후반부의 반전을 위한 빌드업 과정에서 놀란 감독은 흑백과 컬러의 의미를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설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가 빌드업 과정이 너무 길어서 흑백과 컬러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귀찮게 여기는 관객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이 시도는 의도가 있고 의미가 있는 영화 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을 제기하는 모멘텀이 되는 것이 오펜하이머와 스트라우스의 갈등이란 점을 이해한다면 극 초, 중반 빌드업 과정이 그나마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팁을 제공한다. 

영화 오펜하이머 흑백

 

영화 오펜하이머 with 아인슈타인 -컬러

크리스토퍼 놀란 특유의 상상력은 왜 최소화되었나?

이 영화는 지나칠 정도로 고증에 충실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놀라운 상상력은 전혀 개입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물론 영화의 구조와 구성 방식 창의성은 기존의 클리세를 지나치게 배격하는 것이기에 관객들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 전기 영화에도 적절한 허구와 극적인 요소가 결합되었을 때 관객들에게 흥미 있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많은 감독들이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에서도 극적 재미를 위해 지나치게 상상력을 동원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을 것을 것이다. 우리의 영화에서도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다루는 작품마저 역사 왜곡에 가까운 상상력을 더하는 경우를 무수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애써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상상력을 배격했다. 그리고 온전히 그 상상력의 몫을 관객들에게 돌려주었다. 시각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흑백과 컬러로 감독의 개입을 최소화했다. 물론 너무도 민감한 이슈들이 많은 작품이기에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놀란 감독의 소심한 선택이라고 비야냥거릴 수도 있다. 1950년대 초 조지프 매카시의 '빨갱이 색출 소동'으로부터 시작된 매카시즘의 광풍을 어떤 수준으로 영화에 소개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놀란 감독의 고민이 엿보였다. 그 선택은 상상력을 배제하고 가능한 역사적 증언과 사실에 입각한 건조한 전달 방법이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의 결과가 결국 놀란 감독의 의도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왕 나오는 아인슈타인, 월트 디즈니, 심지어 미국에서 쫓겨난 찰리 채플린까지 등장해서 매카시즘의 광풍을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이해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영화에서 놀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아니기도 하거니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에 있어 역사를 왜곡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미덕을 위해 재미를 포기했다고 감히 놀란 감독을 위해 변명하고 싶다. 사실 우리 영화에서 지나치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많은 감독들에게 영화 오펜하이머는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펜하이머의 윤리적, 내적 갈등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위력으로 표현한 창의력 

지루하게 관객들의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영화가 갑자기 몰입감을 주는 장면은 세 시간 러닝 타임의 영화의 66% 지난 시점이었다. 나치보다 먼저 원자 폭탄을 만들겠다는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의 정수, 트리니티 실험의 시각적 청각적 표현이 나오는 그 시점부터 관객들에게 놀라운 몰입을 선사한다. 특히 미국이 일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이의 성공을 축하하는 오펜하이머의 연설에서 놀란 감독 특유의 창의적 발상이 등장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그 정치적 결정에 동조한 오펜하이머의 과학자로서의 윤리적 갈등을 원자폭탄의 위력으로 표현한 장면들은 이 영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고 그런 장면은 또 한 번 등장한다. 수소폭탄의 위력이 어떤 장면에서, 왜 등장했는지, 오펜하이머의 내적 갈등은 무엇이었는지, 이 장면에서 놀란 감독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지,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수많은 질문들을 곱씹고 해답을 찾아가면서 수소폭탄처럼 폭발적으로 평점이 상승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영화 오펜하이머 평점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후기는 애정 어린 말로 가득 차 있으면서 평점은 야박한 느낌이 있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하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에 대해 더 많은 평점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윤리적 고민, 원자력의 사용, 매카시즘적인 마녀 사냥, 청문회를 형해화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대비되는 미국 인사 청문회의 실질적 검증 과정,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포함한 핵 군축, 정치와 과학, 정치인과 과학자, 정치적으로 위험한 결정에 대한 과학자들의 무책임한 동조, 헤게모니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권력 투쟁, 그리고 사랑까지 너무나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기에 적어도 이런 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보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권할 수도 없는 영화가 되었다. 양자역학이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모순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필자의 이 모순적 영화 후기를 이해해 주기 바란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양자역학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아인슈타인처럼 필자의 이런 후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단지 필자의 후기를 확률적으로 어느 정도 받아들일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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