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초등 자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라면 교육청에서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관련된 긴급 공지를 받고 당황했을 것이다. 또한 최근 잇따르고 있는 초등 교사 사망 사건으로 교사를 포함한 모든 교육계는 비통함과 함께 한계 상황에 놓인 교권 회복을 위한 비장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학생도 불행하고 교사도 불행한 작금의 교육현실과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본다.
■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이어 31일 양천구 초등 교사 사망 사건 발생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의 파장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31일 서울 양천구의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적 상황이 이어졌다. 이에 관련해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3일 은평구 소재 장례식장을 방문해 조문하면서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아픈 선택을 한 이유를 단호하고 엄정하게 확인하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2일 고인의 사망 관련 악성 민원과의 관련성이 확인되면 수사기관에 고발 조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 교사는 경력 14년 차 30대 교사로 지난달 31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사의 발인식은 3일 오전 은평구 소재 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었다.
또한 31일 오전에는 전북 군산시 동백대교 아래 바다에서 초등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군산해양경찰서는 전날 오전 8시경 신고를 접수한 후 수중 수색을 벌여 초등학교 교사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경찰은 극단적 선택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 2일 30만 교사의 외침 -서울 국회의사당 최대 규모 집회 -9.4 공교육 멈춤의 날 예고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 회복을 위한 교사들의 요구가 받아들이지 않자 2일 30만 명의 교사가 서울 국회의사당 도로에서 최대 규모의 집회를 열고 성명문을 발표했다. 성명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학교 의문사가 없도록 죽음의 원인을 철저히 수사하고 엄중히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
2. 법안을 신속히 개정하고 이를 위해 교육부는 관련 부처와 적극 협력하고 결과를 보여라.
3. 교사의 교육활동을 위축시키는 악성 민원과 문제 행동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책임을 명시하라.
4. 교육 당국은 교사를 전문가로서 존중하고 정책 기획 및 수립 과정에 반드시 교사를 포함하고 소통하라.
5.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사의 연대와 외침에 교육부와 교육청은 책임을 통감하고 동참하라.
일부 교사들은 집회에서 9.4 공교육 멈춤의 날을 강행할 것을 예고했다. 각 지역 교육청은 긴급 공지를 통해 9월 4일(월) 학사 운영 방안에 대한 안내문을 발송했다. 임시 휴업, 교사들의 연가, 병가를 불허하고 정상 등교를 알리는 안내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해당일 교외체험학습 신청 여부를 학부모에게 회신하게 하도록 하여 학부모에게 혼란을 주었다.
현재까지 서이초를 포함 30곳이 재량휴업을 결정했다. 지난 29일까지 17개교에 더해 13개 초등학교가 재량 휴업에 동참했다. 그중 서이초가 위치한 서울이 9개교로 가장 많고, 세종 8개교, 광주, 충남 5개교, 인천 2개교, 울산 1개교 순으로 재량 휴업에 동참한다.
■ 학생의 교육권과 교사의 교권의 접점 모색에 대한 고민
이번 사태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혹자는 학생의 교육권을 축소하고 교사의 교권을 신장하는 쪽으로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올바른 방향은 아닐 것이다.
과거 우리 교육계는 심각한 병폐를 지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교사의 촌지 수수, 교사의 무분별한 학생 폭행 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교사의 정신적 물리적 학대의 후유증으로 지속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 학생의 교육권이 극도로 위축된 상태에서 여러 폐해를 개선하고자 현재의 교육 관련법과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법의 취지가 학생의 정당한 교육권 신장보다는 교권의 위축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 풍조로 인식되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최근의 많은 교사들의 사망 사건은 이런 사회 분위기에 힘들어하는 교사들의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젠 교육 참여자들 간에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교권이 득세하면 학생 교육권이 위축되고, 학생 교육권이 신장되면 교권이 위축되는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는 사회 풍조가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다. 작금의 상황은 교육 참여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기형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럼 해결책은 없는가?
교육 참여자인 학생과 교사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는 상호 존중과 공동의 목표를 지닌 교육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에서 해결책은 출발해야 한다. 또한 학생과 교사 모두 교육 목표를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새로운 교육 질서는 출발해야 한다.
이런 발상에서 출발한다면 교권을 시장시키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체벌은 용서해도 된다는 식의 접근은 결코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내 폭력이나 수업 방해를 저지르는 학생을 선도하기 위해서 벌이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해서 교사에게 부당한 처벌이나 비인격적 모독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은 현행법으로 가능한 것이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한 구체적 세부 사항에 대한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면 개정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작금의 상황은 법률의 개정으로만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공고육과 사교육의 균형 붕괴, 학생, 교사, 학부모, 정책 당국의 인식의 변화 등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육 패러다임의 모색과 교육 참여자의 인식 개선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매우 모호하고 오랜 기간의 정책 숙의와 사회적 참여와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법률이나 입시 정책 변화로 교육을 단기간에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 참여자들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목적으로 존중하는 장기적인 교육 백년지대계의 낡은 프레임이 오히려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은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가 참여자가 되는 가장 광범위한 국가 정책 사항이다. 급하더라도 졸속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미래 동력인 교육을 살려내기 위한 지난한 여정에 한 걸음씩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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