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다루는 서사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다루어야 하는지 아니면 인간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하는지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철저하게 한 쪽 측면에서만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둘 다 취하는 것이 작품의 완성도에 반드시 긍정적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비율적으로 어떤 측면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는 선택할 필요가 있다.
영화 '나폴레옹'은 역사적 관점과 인간적인 관점 두 측면에서 모두 접근하려는 시도를 했다.
만약 이 시도가 성공했다면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화 '마션' 이후 또 다른 그의 마스터피스를 추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둘 다 놓친 영화가 되어 버렸다.
영화 '조커', 'her' 등을 통해 신들린 연기를 보였던 호아킨 피닉스 조차도 갈피를 찾지 못하는 듯 보였다. 심지어 나폴레옹보다 6살 연상이었던 조세핀 역에 14세 연하의 바네사 커비를 선택한 것도 미스 캐스팅이었지만 시나리오 상으로도 조세핀의 다양한 서사는 생략되었다.
나폴레옹의 인간적 측면을 다루면서 나폴레옹의 성공 시점부터 몰락까지 모든 시기를 다루려다 보니 나중에는 역사 편람을 읽는 듯 조급했다.
엄청난 스케일의 세 번의 전투 시퀀스도 쓴 돈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성웅 이순신을 '명량', '한산', '노량'으로 나누어서 전투신의 밀도를 극대화했던 우리 영화의 시도를 참고하라는 조언은 만시지탄이 되었다.
■ 인간 나폴레옹 vs. 영웅 나폴레옹은 병립하기 어려운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지만 매우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서 인물의 역사적 평가에 중점을 두는 것은 하나의 선택이다.
반면에 역사적 사실을 이끌어내는 인물의 내적 동인에 중점을 두는 것도 또 다른 선택이다.
역사적 인물을 전적으로 역사적 측면과 인간적 측면으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두 측면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려는 시도는 자칫 인물의 역사적 측면도 곡해시킬 수 있고 인간적 측면도 훼손할 수 있다.
결국 작가나 감독은 이 두 측면에 대한 비율을 조절하면서 좀 더 중점을 두는 쪽으로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화 '나폴레옹'의 리들리 스콧 감독은 욕심을 부렸다.
나폴레옹의 성공과 몰락의 역사를 모두 조명하면서도 나폴레옹의 사랑과 욕망을 정조준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두 측면 모두 대등하게 정률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나폴레옹의 역사적 성패를 모두 다루려는 시도는 결국 역사 편람을 속독으로 읽는 듯했다.
나폴레옹의 사랑과 욕망을 다루려는 시도는 밀도 깊은 인간적 고민과 내적 동인을 표출하는 것에 실패했다.
결론적으로 영화 '나폴레옹'은 영화를 통해 나폴레옹을 이해하려는 관객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나폴레옹에 접근할 수 없었다. 단지 먼발치에서 화려한 복장을 한 인물의 영웅적 서사의 편린만 바라볼 뿐이었다.
■ 성웅 이순신을 다룬 '명랑', '한산' 그리고 '노량'의 선택을 영화 '나폴레옹'이 고려했다면?
과거 성웅 이순신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난중일기를 소재로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TV 시리즈 '불멸의 이순신'(104부작, 2004년)까지 다양한 장르로 성웅 이순신을 다루었다.
영화는 더욱 많은 작품이 존재한다. 유현목 감독의 영화 '성웅 이순신'(1962년 작)을 시작으로 최근에 성웅 이순신 3부작 '명량'과 '한산', 그리고 12월 20일 개봉하는 '노량'까지 많은 작품에서 성웅 이순신이 등장한다.
사실 TV 시리즈 '불멸의 이순신'이 104부작이었지만 그의 삶을 온전히 다루었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영화 성웅 이순신 3부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어쩌면 안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도 역사의 주요 시기마다 밀도 깊은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가 이끌었던 전투를 밀도 깊게 다루기 위해서는 한 편의 영화로 마무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거기에 조세핀 자체의 서사와 연상의 아이 엄마 조세핀과 나폴레옹의 애증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한 편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나폴레옹이 이끌었던 첫 전투였던 아르콜 다리 전투를 시작으로 나폴레옹 몰락의 전조였던 러시아 원정 그리고 마지막 워털루 전투까지 수 없이 많은 전투를 결정적 시기별로 나누어 몇 부작으로 다루었다면 영화 '나폴레옹'에서 소모품처럼 사용되었던 전투신보다는 가성비가 높았을 것이다.
나폴레옹을 다루지 않았다면 몰라도 기왕 다루기로 마음먹었다면 국적을 떠나서 영국인이더라도 리들리 스콧 감독은 성웅 이순신을 다룬 한국 영화의 3부작 구성을 참고했어야 했다는 조언은 만시지탄이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집요하고 치밀하게 작품의 밀도를 위해 과감하게 연작을 선택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를 참고했어야 했다.
■영화 '나폴레옹' 평점
영화 '나폴레옹'은 정말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특히 나폴레옹의 인간적 측면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서 그의 인격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과 오이디푸스 콤플랙스에 가까운 어머니와의 관계와 여성관의 형성 과정이 조세핀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다루지 못한 점은 더욱 아쉬웠다.
아주 방향을 바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된 정치 측면에서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거나 러시아 원정 시에 일어났던 프랑스군의 비인간적 일탈 행위와 무책임했던 나폴레옹의 처신 등 역사관 관점에 좀 더 치밀하게 초점을 맞추었다면 2023년작 영화 '나폴레옹'보다는 흥미로웠을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170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지 못한 영화 '나폴레옹'에 좋은 평점을 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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